골드만삭스, 3억개 정규직 영향
카피·문서·번역·법률보조 등
마케팅·콘텐츠 분야 해고 진행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AI)이 일부 직종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2일 워싱턴포스트(WP)는 마케팅과 소셜미디어 콘텐츠 부문에서 챗GPT가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AI가 나날이 고도화되면서 인간처럼 어색함 없이 대화를 나누고 작곡하거나 컴퓨터 코드도 작성할 수 있게 됐다.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이 기술을 주류에 올려놓기 위해 종종 무료로 제공해 사용자 수백만 명이 이를 쓰도록 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공장과 소비재 업체, 식료품점, 창고 물류 회사 등은 AI와 로봇을 사용해왔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이선 몰릭 부교수는 “과거 자동화의 위협은 어렵고 더러우며 반복적인 작업에 관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높은 학력이 필요한 가장 고소득이며 제일 창의적인 일을 정면으로 겨냥한다”고 설명했다.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올 3월 생성형 AI가 전 세계에서 3억 개의 정규직 일자리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화이트칼라의 일자리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올리비아 립킨은 기술 스타트업에서 유일한 카피라이터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챗GPT가 출시된 후 업무에 챗봇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글이 내부 메신저에 올라오기 시작했고 이후 몇 달간 일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올 4월 립킨은 아무 설명 없이 해고당했고 회사 관리자들이 챗GPT를 쓰는 게 카피라이터에게 돈을 주는 것보다 더 저렴하다고 쓴 글을 보고 해고의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됐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AI가 인간의 일자리에 얼마나 지장을 줄지 판단하기는 너무 이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몰릭 교수는 “카피라이팅이나 문서 번역·작성, 법률 보조와 같은 일은 특히 AI로 대체될 위험에 처해 있지만 고급 법률 분석이나 창의적 글쓰기, 예술 분야는 인간이 여전히 AI를 능가하기 때문에 쉽게 대체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미 섭식장애협회(NEDA)는 섭식 장애 환자 상담에 챗봇을 활용했다가 챗봇이 오히려 과도한 다이어트를 권하는 바람에 이 서비스를 중단했다.
UCLA의 디지털 노동 분야 전문인 세라 로버츠 부교수는 챗봇이 오류를 저질러 기업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면서 챗GPT를 업무에 도입한 기업들이 성급하게 나서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월스트릿저널(WSJ)은 지난해부터 미국 화이트칼라 종사자들에 대한 대규모 감원이 이뤄진 가운데, 인공지능(AI)가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대체하고 기업들도 비용 효율화를 추구하면서 줄어든 일자리가 다시 늘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보도했다.
실제 최근 화이트칼라 종사자의 실업 사례는 늘어나고 있다. 비영리단체 ‘임플로이 아메리카’에 따르면 올해 3월 마감된 회계연도 기간 증가한 화이트칼라 실업자는 15만명에 이르렀다. 특히 정보기술(IT) 종사자들의 실직이 많았다. 연방 노동부 통계를 보면 IT 분야 정리해고는 1년 전에 비해 88% 급증했고 금융과 보험 업계의 정리해고는 55% 늘어났다.
경기가 개선되더라도 화이트칼라 채용이 다시 급증할지도 미지수다. AI가 발달하면서 각 기업에서 화이트칼라 노동에 대한 필요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맥도널드, 볼보 등의 전 최고디지털책임자(CDO)를 지낸 아티프 라피크는 “우리는 지식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 있는 것 같다”며 “이제는 같은 일을 하기 위해 더 적은 사람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식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수요가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걸을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각종 현장에서 일하는 ‘블루칼라’ 노동자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에 따르면 오는 2031년까지 식당 요리사와 패스트푸드 음식점 종업원, 화물 운송 등 1년에 3만2,000달러 정도를 받을 수 있는 블루칼라 일자리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실리콘밸리=정혜진 특파원·이태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