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이민자 출신 미국인 CEO 1993년 창업 후 게임산업 공략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30일 시가총액 1조달러 클럽에 가입하며 실리콘밸리에서 새 역사를 썼다. 챗GPT발 인공지능(AI) 열풍의 최대 수혜 기업으로 꼽히는 엔비디아는 올해 들어 주가가 166% 넘게 폭등한 결과 이날 뉴욕 증시에서 장중 한때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어섰다. 애플·마이크로소프트(MS)·알파벳·아마존에 이어 역대 다섯 번째다. 챗GPT 등 생성형AI 구동에 필수적인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전 세계 시장에서 엔비디아가 90% 이상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의 이 같은 ‘벼락 성공’에는 설립자 젠슨 황(60) 최고경영자(CEO)의 통찰력이 있었다는 평가가 나오며 전 세계가 그를 주목하고 있다.
1993년 서른 살에 엔비디아를 창업한 뒤 30년 만에 ‘시총 1조 달러 기업’으로 일궈낸 황 CEO는 대만 이민자 출신 미국인이다. 그는 열 살 때인 1973년 사회적 불안을 피해 홀로 텍사스 친척집으로 건너가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는 3년 넘게 인종차별을 당했지만 학업에 매진한 결과 오리건주립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하게 됐다. 황 CEO는 자신이 학사 과정을 마치던 1984년에 애플의 매킨토시 출시로 개인용 컴퓨터 시대가 열렸다며 “졸업하기에 완벽한 해였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어 그는 1992년 스탠퍼드대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반도체 기업 LSI로지스틱스와 AMD에서 중앙처리장치(CPU) 관련 개발자로 일하다 이듬해 동료 두 명과 함께 엔비디아를 설립한다. 그래픽 칩셋을 설계하던 엔지니어 커티스 프리엠, 전자기술 전문가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황 CEO 세 명이 작은 아파트에 꾸린 벤처기업이 엔비디아의 시작이었다.
어릴 적부터 컴퓨터게임을 즐긴 황 CEO는 CPU가 지배적이던 당시 3D게임 시장의 발전 가능성을 내다보고 GPU 개발에 나섰다. 직렬연산 방식을 이용하는 CPU와 달리 GPU는 병렬연산 구조를 채택해 방대한 그래픽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산 처리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에 1995년 오디오와 그래픽을 통합한 그래픽카드 ‘NV1’을 처음 출시했지만 비싼 가격과 낮은 호환성 때문에 시장에서 외면당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2년 뒤 내놓은 NV3(리바 128)가 3D게임 시장이 확장되던 시기와 맞물리며 급부상한 엔비디아는 1999년 최초의 지포스 제품군인 ‘지포스 256(NV10)’ 출시와 기업공개(IPO) 성공으로 본격 이름을 알렸다. NV10은 처음으로 CPU 도움 없이 GPU 자체적으로 3D 명령어를 처리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기존 GPU와 달리 CPU에 의존하지 않고 동영상 처리 가속 및 보정까지 가능해지며 부속 제품이 아닌 별도의 제품군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때부터 황 CEO는 이를 ‘그래픽처리장치(GPU)’로 정의하기 시작했으며 업계에서도 GPU는 CPU와 동급으로 여겨졌다.
황 CEO는 게임 산업을 제패한 데서 멈추지 않고 모든 영역으로 GPU 활용 폭을 넓히기 시작했다. 2006년 병렬 컴퓨팅 플랫폼인 ‘쿠다(CUDA)’를 출시했고 2010년 GPU의 범용 연산인 GPGPU를 선보이며 칩 생태계를 확장했다. 이는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슈퍼컴퓨터, 암호화폐 채굴, AI 딥러닝, 자율주행 등 빅데이터를 신속히 처리해야 하는 차세대 산업 전반에 꼭 필요한 기술이었다. 이 기술은 곧 엔비디아의 급속 성장으로 이어졌다. 엔비디아 지분의 약 3.5%를 보유한 황 CEO의 재산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31일 블룸버그 억만장자지수에 따르면 황 CEO의 재산은 연초부터 지금까지 160% 폭등해 약 360억 달러에 달한다.
로이터통신은 반도체 생산을 아웃소싱으로 해결해 속도를 높이고 고성능 반도체 설계에 집중한 점 역시 그의 차별화된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황 CEO는 처음부터 제조 공장이 없는 반도체 회사를 구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엔비디아는 대만 TSMC 등에 위탁생산을 맡겨 자본 지출 부담을 줄이고 있다. 도전과 혁신의 아이콘인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파격적인’ 캐릭터로도 유명하다. 검은색 터틀넥에 청바지 차림으로 각인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처럼 그는 10여 년째 검은색 가죽 재킷을 고수해왔다. 엔비디아 주가가 처음으로 100달러를 넘겼을 때 어깨에 기업 로고 문신을 새긴 일도 잘 알려져 있다.
<장형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