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의 ‘인플레 진단’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새 논문에서 인플레이션을 낮추려면 연준이 경제 둔화를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시장의 열기가 물가 상승의 핵심 요인인 만큼 이를 해소하려면 경기를 가라앉히는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버냉키 전 의장은 23일 워싱턴DC 브루킹스연구소에서 “노동시장의 수급 불균형은 여전히 지속 가능한 수준에 다다르지 못했고 기대 인플레이션은 높아지고 있다”며 “우리는 연준이 물가상승률을 목표치로 되돌리려 한다면 경제 둔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이날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출신인 올리비에 블랑샤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과 함께 인플레이션을 주제로 한 공동 논문을 발표했다.
학계의 두 거장은 노동시장이 “물가를 밀어올리는 근원”이라고 지목했다. 이들은 “고용 과열은 시간이 갈수록 물가 상승에 지배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며 “물가를 낮추려면 인력 수요를 줄이고 공급을 늘려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고용 문제는 끈질기기 때문에 경제가 가라앉아야만 물가에 미치는 압력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두 저자는 “(어느 정도의 경제 둔화가 필요한지는) 노동시장의 구조적 특징, 채용 시장의 효율성 등에 달렸다”며 깊은 침체부터 소폭 둔화까지 가능성을 열어뒀다.
제롬 파월 현 연준 의장도 버냉키 전 의장의 이 같은 진단에 동의하는 입장이다. 파월 의장은 지난주 연준 주최 콘퍼런스에서 “노동시장이 인플레이션에서 점점 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버냉키 전 의장의 연구는 파월 의장의 진단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고용 과열을 식히기 위해서는 경제 둔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현재 미국의 인력 수급 불균형은 지속되고 있다. 미국의 비농업 부문 신규 일자리 수는 3월 16만 5000개에서 4월 25만 3000개로 늘었다. 파월 의장이 적절하다고 보는 월 10만 명 증가를 웃돈다. 고용 수요도 지속되는 분위기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글로벌이 이날 발표한 5월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5.1로 전월(53.6)보다 올라 13개월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시장 전망치 52.6도 상회한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