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가격 4만8,008달러나 2020년 3월 대비 30% 급등
자동차 시장조사 분석업체인 콕스 오토모티브의 찰스 체스브로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초 자동차 관련 컨퍼런스에서 “미국에서 신차는 이제 더 이상 보통 사람들의 일상 구매품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체스브로 선임 이코노미스트의 말처럼 과거에 신차는 보통 사람들이 노력하면 살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신차 구입이 보통 사람들이 구입하기에 쉽지 않은 일이 된 지 오래되었고, 보통 사람들이 사기 힘든 상황이 이제 현실이 되어버렸다. 이 같은 사실은 하위 20%의 소득 계층의 신차 구매 비율이 지난 11년 사이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자동차 없이 일상 생활을 영위할 수 없어 자동자가 일상품이 된 미국에서 이제 새 자동차를 사는 일이 점점 더 어렵게 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신차 가격이 급등한 데다 고금리 여파로 할부금 부담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7일 워싱턴포스트(WP)는 가격 급등에 금리 인상 여파에 따른 할부금 부담 가중, 여기에 이윤 추구를 위해 값비싼 모델 생산에 집중하고 있는 자동차 완성업체의 판매 전략까지 더해지면서 미국에서 신차를 구입하는 ‘아메리칸 드림’이 사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차 구입이 어려워진 데는 무엇보다 신차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자동차 전문 평가기관인 켈리블루북에 따르면 3월 기준으로 미국 내 신차 평균 가격은 4만8,008달러로 2020년 3월에 비해 30%나 급등했다.
한인 조모씨는 “3년 리스가 만기하면서 현재 타고 있는 차량의 새 모델로 바꿔탈 생각도 했지만 가격이 수천달러나 훌쩍 뛰었다”며 “결국 차를 할부로 구매해야 하는데 자동차 리스 이자율도 높아져 이래저래 부담이 많다”고 토로했다.
신차 가격 급등과 함께 자동차 할부금 부담도 신차 구매를 어렵게 만든 요인 중 하나다. 연방준비제도(FRB·연준)가 지난해 3월부터 10번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당시 0~0.25%였던 기준금리는 이제 5~5.25%로 급상승했다. 기준금리 상승은 자동차 할부 이자 상승으로 이어졌다. 자동차 전문 웹사이트 에드먼즈에 따르면 지난해 중반 자동차 할부금은 월 평균 686달러였지만 지난달에는 730달러로 크게 올랐다.
신차 가격과 할부금 인상으로 자동차 사기가 어려워지자 신차 구매를 놓고 소득에 따라 ‘살 수 있는 층’과 ‘살 수 없는 층’으로 나뉘는 양극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연방 노동통계국의 소비자지출조사를 보면 소득 순위 하위 20%에 속하는 계층의 신차 구매 비율이 지난 11년 사이에 최저 수준으로까지 떨어진 반면에 소득 상위 20%에 속하는 고소득층의 신차 구매는 1984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는 대조를 보였다.
자동차 완성업체들도 신차 가격을 끌어 올리는 데 일조했다. 팬데믹 당시 반도체 칩 품귀 사태를 겪으면서 수익성이 높은 고급 차량 생산을 늘리는 대신 값싼 자동차 모델 생산을 크게 줄였다. 제너럴모터스(GM)가 전기차 셰볼레 볼트 EV를 단종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내에서 지난 2017년에만 해도 2만달러 이하 가격대의 자동차 모델이 11개였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사라지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4개로 줄었고 올해 3월에는 2개로 급감했다. 이와는 달리 미국에서 6만달러가 넘는 고급 모델의 차량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7년 61개 모델에서 2021년에는 76종, 지난에는 90종으로 늘었다. 올해 3월엔 94개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값싼 자동차 모델을 줄이면서 고가 신차 생산에 중점을 둔 자동차 완성업체들은 신차 공급 감소에도 매출 규모가 늘었다. 콕스 오토모티브에 따르면 2019년 미국에서 연간 170만대의 신차가 출시됐지만 지난해엔 139만대에 그쳤다. 하지만 지난해 매출 규모는 2019년에 비해 150억달러나 증가했다.
<남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