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시장퇴출 유도
연방 금융 당국이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의 붕괴를 유도하는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자산 매각과 출자 등 각종 자구 노력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정부도 발을 빼고 있다는 것이다. 주식시장은 퍼스트 리퍼블릭의 생존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26일 퍼스트 리퍼블릭 측이 지난달 300억 달러의 예금을 지원했던 월가 대형 은행과 접촉해 자산 매입을 제안했지만 성사되지 않고 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소식통은 퍼스트 리퍼블릭이 최소 4개 은행과 만났으나 그 중 3곳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자산 일부를 인수하지 않는 한 지원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전했다.
연방 정부의 지원 가능성도 낮다. CNBC는 이날 관계자를 인용해 정부가 퍼스트 리퍼블릭 문제에 대한 개입을 꺼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손을 떼는 차원을 넘어 정부에서 사실상 퍼스트 리퍼블릭의 시장 퇴출을 유도하는 분위기가 탐지된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날 FDIC가 퍼스트 리퍼블릭의 건전성에 대한 평가 등급을 하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경우 퍼스트 리퍼블릭은 연방준비제도(FRB·연준)의 전통적 자금 공급 시스템인 할인창구(discount window)는 물론 지난달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새로 마련된 은행기간대출프로그램(BTFP)도 이용하지 못할 수 있다. 퍼스트 리퍼블릭의 마지막 자금 공급줄이 끊긴다는 의미다.
거론되는 다른 자구안들도 이행되기 쉽지 않은 분위기다. 대형 은행들이 예금으로 지원했던 300억달러를 출자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됐지만 단순히 손실을 떠안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꺼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11개 대형 은행 입장에서는 출자 전환보다 계속 예금 형태로 유지할 경우 자금을 보전할 가능성이 남는다. 퍼스트 리퍼블릭이 문을 닫더라도 무보험 예금을 정부가 보장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퍼스트 리퍼블릭이 사실상 붕괴 수순을 밟는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대로는 분기별 손실이 지속되고 인력과 고객이 유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드리븐리서치 애널리스트인 돈 빌슨은 “시간은 퍼스트 리퍼블릭의 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퍼스트 리퍼블릭 주가는 29.75%나 급락했다. 시가총액은 이날 약 11억달러로 400억달러 이상이었던 정점(2021년 11월) 대비 40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뉴욕=김흥록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