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핵심산업 공급망 북미위주 생산으로 재편
미국 정부가 새로운 자동차 탄소 배출 규제안을 발표하는 데는 자국 전기차 보급 속도를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한 계산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그간 2030년까지 미국에서 판매되는 전체 차량의 50%를 전기차로 대체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이번 규제안은 여기서 더 나아가 2032년까지 전기차 판매 비중을 67% 수준까지 끌어올릴 것을 강제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한 소식통은 “연방 환경보호청(EPA)이 오는 12일 발표할 규제안은 현재까지 자동차 오염에 대한 가장 엄격한 규제를 포함한다”며 “자동차 업체들이 전기차 판매를 크게 늘릴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된 신차 가운데 전기차의 비중이 5.8%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하면 이번 조치가 상당히 도전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해당 규정이 2035년까지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 중인 캘리포니아주와 연방 조치를 동기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같은 목표는 자동차 업계에도 심각한 도전”이라며 “대부분의 주요 자동차 업체들이 전기차에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붓고 있지만 제시된 구상에 부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촉발된 공급망 불안으로 반도체를 비롯해 배터리 등에 활용되는 원자재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점 역시 관련 업계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리튬 등 원자재에 대한 중국의 규제 움직임이 진행 중인 데다 미국 내 전기차 관련 인프라 확충이 미비한 점 역시 걸림돌이다.
미 자동차 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포드 등은 2030년까지 전기차 판매 비중을 40~50%가량으로 높이겠다는 행정부의 목표에 동참 의사를 밝히면서도 ‘업계의 통제를 벗어난 요인’들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또한 미국 정부가 전기차·배터리·반도체 등 핵심 산업의 육성을 위한 전폭적인 지지에 나서면서 미국 내 제조업이 새로운 호황기를 맞이하는 모습이다.
미 인구조사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미 제조업 관련 공장 건설에 지출된 비용은 1,080억달러로 연간 총액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관련 지출은 전년(789억달러)과 비교해서도 40% 가까이 불어났다. 건설업 정보 제공 업체인 닷지건설네트워크의 리처드 브랜치 수석 연구원은 “지난해 시작된 미국의 공장 건설 중 절반은 전기차 배터리와 반도체 관련 산업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자국 제조업의 생산 비중을 높이고 특히 핵심 산업 관련 공급망을 북미 위주로 재편하기 위해 제시한 막대한 보조금과 잇따른 지원책들이 한때 저비용 생산 국가로 떠났던 기업들의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본국 회귀)에 불을 붙이고 있다는 평가다.
글로벌 투자은행(IB) UBS의 크리스 스나이더 연구원은 “코로나19에 따른 공급 부족과 출하 지연으로 미국 제조 업체들은 광범위한 공급망에 대해 재고하게 됐다”며 “지난해 미국의 생산능력은 2015년 이후 가장 강력한 성장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정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