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멕시코 이민자 수용소 참사 배경 분석
멕시코 수용시설 포화 상태
높아진 난민 장벽에‘병목’
모바일앱 지원도 먹통 일쑤
“ 단발성 화재넘어 정책문제”
최소 40명의 목숨을 앗아간 멕시코 시우다드 후아레스 이민자 수용시설 화재 참사(본보 29일자 A1면 보도)를 두고 책임론 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멕시코 정부는“추방 조치에 항의하던 이들이 매트리스에 불을 질렀다”고 주장하는 반면, 유족들은“멕시코이민청 직원들이 불이 난 건물 문을 잠근 채 현장을 떠나 피해가 커졌다”고 맞서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 원인은 미국의 이민 정책에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화재의 희생자들은 미국행을 꿈꾸며 멕시코-미국 국경 지대에 머물던 중남미 출신 이민자들이었는데, 이전보다 엄격해진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정책 탓에 발생한‘병목 현상’이 사고를 야기했다는 것이다. 단발성 화재라거나, 멕시코 당국의 관리 부실로 볼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29일 뉴욕타임스(NYT)는 전날 발생한 멕시코 이민자 수용 시설 화재에 대해 “국경 단속이 심해지면서 추방된 이들뿐 아니라, 새로운 이민 신청자까지 멕시코로 몰리고 있지만 미국의 이민자 수용 정책은 더 까다로워져 현장 혼란만 커지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2021년 1월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은 이민자 추방 권한을 확대한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타이틀42’ 제도를 폐지하고 인도주의적 지원을 내세웠다. 그러나 오는 5월 타이틀42의 만료를 앞두고, 오히려 이민 정책은 더 엄격해졌다. 예컨대 쿠바 아이티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출신 이민자에게 재정적 지원을 할 ‘미국 내 스폰서’가 있다면 2년간 임시 거주가 허락된다. 그러나 이는 본국에서의 가난과 폭력을 피하려 이민 행렬에 나선 대다수와는 사실상 무관한 조건이다.
다른 방법은 연방 이민세관보호국(CBP) 앱을 통해 사전에 미국 입국 지원서를 제출하는 것뿐이다. 질서 정연한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취지지만, 실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앱 접속을 위해선 스마트폰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민자들이 머무는 국경지대 수용소는 인터넷이 개통된 곳이 드물다.
앱의 기술적 오류도 큰 문제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CBP 앱은 흑인 이주민의 안면 인식을 잘하지 못한다. 보안 절차상 접속 때마다 이민자들은 실시간으로 본인 사진을 찍어야 한다. 미국이민변호사협회(AIC)의 라울 핀토 변호사는 “앱의 기술장애가 수천 명을 입국 절차에서 제외시켰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신청서 작성에 성공해도 ‘선착순 마감’에 가로막히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 멕시코 입국항 8곳에서 심사받을 기회가 주어진 건 하루 평균 740명뿐이다. NYT는 “입국항 한 곳에 이주민 수용소 수십 곳이 있고, 1개의 시설엔 하루 최대 100여 명이 새로 찾아온다”고 전했다. 텍사스주 국경지대에서 이주민 시설을 운영하는 한 목사는 “작년까지만 해도 이주민들이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하루이틀 정도 머물렀는데, 지금은 장기체류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240만 건이었던 국경 불법이민자 체포는 올들어 한 달에 12만8,000건으로 줄었다. 바이든 정부는 ‘성과’로 내세우지만, 현장 분위기는 다르다. 합법적 이민 절차를 개선하는 대신, 멕시코 측에 골칫거리를 떠민 결과라는 것이다. 티후아나에서 이민자 수용소를 운영하는 헤레라는 NYT에 “지난달 CBP 앱이 작동하지 않아 응급수술이 필요한 생후 4개월 아기가 국경시설에서 숨졌다”며 “(신청제가 아니었던) 작년이었다면 국경을 빠르게 넘도록 인권단체가 도왔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