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감원, 찻잔 속 태풍?
미국에서 호텔·식당·술집 등 접객업이 최근 가장 빠르게 근로자를 채용하며 일자리가 풍부한 노동시장의 호황을 떠받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특히 빅테크들이 최근 대규모 감원을 단행하며 미국 경제에 불안감을 드리웠으나, 노동시장 지표가 여전히 강해 아직 경기침체의 신호는 아니라는 진단이 나온다.
월스트릿저널(WSJ)은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초기 인력을 감축했던 레저·숙박 업계가 최근 인력을 다시 고용하고 있다고 5일 보도했다. 최근 아마존, 페이스북 모기업 메타, 구글 모기업 알파벳 등 빅테크와 금융·자동차 업계 등의 대기업들이 잇달아 감원에 나섰지만, 이들의 감원 규모보다 접객업 등 부문에서 채용하는 인력 규모가 더 커 지난 1월 미국 실업률이 53년 만의 최저치인 3.4%로 나타났다고 WSJ은 분석했다.
팬데믹 초기 정보기술(IT) 기업들은 가장 빠른 속도로 인력을 고용했고 작년 상반기까지도 계속 일자리를 늘려갔다. 하지만 지난해 중반 IT업계 일자리 증가세는 다른 업계보다 뒤처지기 시작했고, 같은 기간 접객업과 헬스케어 업종이 다른 업계보다 일자리를 더 빠르게 늘렸다.
급기야 IT업계는 지난 두 달간 대규모 감원에 나섰지만, 접객업과 헬스케어 산업은 지난 1월에만 20만7,000명의 인력을 신규 고용하며 그달 민간 부문 채용의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재취업 알선(아웃플레이스먼트) 기업인 ‘챌린저, 그레이 앤드 크리스마스’에 따르면 작년 11월 이후 미국 기업의 감원 발표 중 약 절반이 IT기업에서 이뤄졌다.
팬데믹 이전 소비 습관으로의 복귀, 금리 상승, 경기 후퇴에 대한 두려움 등 때문에 몇몇 기업들은 직원 수를 재조정했다. 이는 IT업계가 팬데믹이 정점일 당시 IT 제품·서비스에 대한 수요 증가로 과하게 늘렸던 고용 규모를 일정 부분 되돌리는 것이라고 WSJ은 분석했다.
반면 식당 체인인 치폴레 멕시칸 그릴은 수요 증가에 대비해 1만5,000명을 고용할 예정이며, 대형 수퍼마켓 체인 크로거 등 일부 식품 기업은 인력 공백을 메꾸기 위해 퇴직 직원들을 채용하고 있다.
이처럼 노동시장에서 구인난이 여전하기 때문에 IT기업들의 대규모 감원은 아직 경기침체가 온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WSJ은 진단했다. WSJ은 과거 사례를 들어 빅테크의 감원 물결이 본격적인 경기후퇴로 이어지려면 피해가 더 크게 확산해야 한다고 짚었다.
2000년대 초 닷컴버블 붕괴와 2007∼2009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에는 한 분야의 붕괴 여파가 금융계와 소비 지출, 기업 투자로 확산했으며, 결국 경제 전반의 경기후퇴와 대규모 해고로 이어졌다. 그러나 수압파쇄법(프래킹) 등 셰일가스 개발 기술을 주도한 체서피크 에너지가 파산보호신청을 한 2015년의 경우 이 위기가 에너지 산업에만 국한됐고 경제는 최장기간 확장 국면을 이어갔다.
현재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인해 2000년대와 마찬가지로 IT 업종과 주택 시장은 흔들리고 있지만, 노동시장 지표는 여전히 미국 경제가 견조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지난 1월까지 6개월 동안 연방 노동통계국이 모니터링하는 업종 중 급여가 계속 늘어난 업종은 72%에 달해 지난 30년간의 평균인 62%를 상회했다.
다만 기업 실적 전망은 우려스러운데, 금융정보업체 리피니티브가 분석하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의 11개 업종 중 9개 업종의 최근 분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감소했다. 만약 이익 감소에 감원으로 대응하는 기업들이 더 늘어나면, 이로 인해 소비자 지출이 줄고 경기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도 또 다른 위험으로 꼽힌다. 2001년과 2007∼2009년에는 연준이 금리를 인상한 이후 경기후퇴가 왔지만, 인상하지 않았던 2015년에는 경기후퇴가 없었다. 금리 인상 효과는 경제의 모든 부분에 스며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