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기고서 “양극화 심화시켜”
“단합해 규제 법안 마련” 촉구
FTC, 2년간 M&A 22건 제동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야당인 공화당에 “강력한 빅테크 규제 법안에 협조해달라”고 요청하며 연초부터 빅테크에 대한 규제의 포위망을 바짝 조이기 시작했다. 정권 출범 직후 주요 국정과제로 힘을 실었다가 중국 견제와 인플레이션 대응 등에 순위가 밀렸던 빅테크 독점 문제를 다시 전면에 내세우는 모양새다. 공화당도 빅테크와 중국 공산당과의 관계를 살펴보겠다고 엄포를 놓아 가뜩이나 침체 위기에 처한 빅테크 업계의 험난한 앞날이 예상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11일 보수 매체인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미국의 기술 산업은 가장 혁신적”이라면서도 “그러나 일부 빅테크 기업은 미국인의 개인정보를 남용하고 사회의 극단화와 양극화를 심화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는 빅테크 플랫폼이 아동 성 착취물과 마약 유통, 스토킹 범죄 등에 악용되는 사례를 문제 삼은 뒤 “근본적으로는 빅테크 기업의 개인정보 수집을 금지하고 사용자가 올린 콘텐츠에 대해 인터넷 사업자의 면책을 규정한 법 조항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빅테크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후 빅테크를 제어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행정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정부와 공화당이 ‘단합’해 규제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구체적인 빅테크 기업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았다.
바이든 정부는 출범 직후 ‘빅테크 저승사자’로 통하는 리나 칸 컬럼비아대 로스쿨 부교수를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으로 임명하고 강력한 규제 드라이브를 걸었다. 칸 위원장이 바이든 정부 첫 임기 2년 동안 무산시킨 기업 인수합병(M&A)만 총 22건에 달한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의 첫 2년에 비해 2배 많은 건수다. 22건 가운데 70%가량인 15건은 FTC의 문제 제기로 M&A 거래가 최종 취소됐다. 메타(옛 페이스북)가 가상현실(VR) 업체 위딘언리미티드를 인수하려다 FTC의 반독점 심사 문턱에 걸려 결국 지난해 8월 인수를 접은 것도 그 중 하나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해 초 게임사 액티비전블리자드를 690억 달러(약 86조 원)에 인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반독점 제소를 한 FTC와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미 FTC가 빅테크를 겨냥해 칼을 휘두르는 와중에 바이든 대통령이 보다 강도 높은 규제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공화당의 초당적 협조를 구하면서 빅테크 업계도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어느 기업을 타깃으로 삼을지가 주목되는 가운데 애플 전문 매체인 나인투파이브맥(9to5MAC)은 “바이든 대통령이 ‘반경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애플을 사실상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여기에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도 ‘중국 견제’라는 각도에서 빅테크을 정조준했다. 공화당 주도로 하원에 신설된 ‘미국과 중국 공산당 간 전략 경쟁에 관한 특별위원회’를 이끄는 마이크 갤러거(공화당) 위원장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미국이 어떻게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지 빅테크 기업과 논의하고 싶다”면서 “특히 빅테크와 중국 공산당과의 관계를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다. 빅테크가 미중 경쟁 구도에서 자국에 유리하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따져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면서 갤러거 위원장은 미국이 인권침해 현장으로 지목한 중국 신장에서 2020년 영화 ‘뮬란’을 촬영한 디즈니, 2019년 홍콩의 반중국 시위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가 결국 중국에 사과한 미 프로농구(NBA) 휴스턴로키츠 측을 청문회 증인으로 부르겠다고 밝혔다. 해당 기업들이 중국에 협조했는지 여부를 수년이 지난 지금 다시 끄집어내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의미다.
<조양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