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한 날부터 자금 빼돌려…비공개 투자·호화 부동산 매입
세계 3대 암호화폐거래소였지만 파산보호를 신청한 FTX의 샘 뱅크먼프리드(30) 창업자가 결국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FTX가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갖고 있어 안전하다는 점을 앞세워 투자금을 끌어모은 뱅크먼프리드는 고객이 맡긴 돈으로 호화 부동산을 사들이고 정치자금을 대는 등 FTX 창업 초기부터 사기 행위를 일삼았으며 그의 회사는 회계사도 고용하지 않을 정도로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된 것으로 드러났다.
13일(현지 시간) CNBC 등에 따르면 이날 미국 뉴욕남부지검, 증권거래위원회(SEC),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일제히 뱅크먼프리드를 기소 및 고소했다. 데이미언 윌리엄스 뉴욕남부지검장은 “이번 사건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금융 사기 중 하나”라며 뱅크먼프리드를 형법상 사기와 돈세탁, 불법 선거자금 공여 등 8개 혐의로 기소했다. 공소 사실이 모두 인정되면 뱅크먼프리드는 최대 115년 형을 받게 된다.
뉴욕남부지검은 13쪽짜리 공소장에서 “뱅크먼프리드는 FTX가 출범한 2019년부터 고객과 투자자들을 속이는 음모를 꾸민 뒤 고객 돈을 암호화폐 헤지펀드 계열사인 ‘알라메다리서치’로 빼돌려 이 회사의 채무를 갚고 지출을 충당했다”고 적시했다. 뱅크먼프리드는 정치 기부 규제를 우회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명의를 사용하는 등 불법 기부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주로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과 진보 성향 정치인에게 기부했지만 공화당에도 적지 않은 돈을 뿌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뉴욕남부지법에 그에 대한 민사소송을 제기한 SEC의 소장에는 그의 범행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SEC는 “뱅크먼프리드는 FTX가 출범한 날부터 사기를 지휘했고 이런 행위는 그가 FTX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난 지난달까지도 계속됐다”고 밝혔다. 또 “FTX는 최고 수준의 자동화된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갖고 있어 투자금은 안전하다고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면서도 이 돈을 비공개 벤처 투자, 호화로운 부동산 구매, 대규모 정치 기부금에 활용했다”며 “그가 개인 투자를 하기 위해 알라메다를 자신의 ‘돼지 저금통’처럼 이용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바하마 당국에 따르면 FTX가 바하마에서 사들인 부동산은 35곳, 금액으로는 총 2억 5630만 달러(약 3300억 원) 규모에 달한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뱅크먼프리드는 속임수에 기반한 ‘카드로 만든 집’을 지어놓고 투자자들에게는 ‘암호화폐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건물’이라고 속였다”고 꼬집었다. 이날 CFTC도 연방 상품법 위반 혐의로 뱅크먼프리드와 FTX·알라메다리서치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한때 기업가치가 320억 달러(약 41조 5000억 원)에 달했던 FTX의 구멍가게식 경영 행태의 민낯도 드러났다. FTX 파산 절차를 진행 중인 존 J 레이 CEO는 하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서 “FTX에는 회계사도 없었다”며 “중소기업이나 사용하는 회계 소프트웨어 ‘퀵북’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