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기업·금융업종 등 사무직 구조조정·감원 줄이어
한인 직장인 김모씨는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재취업을 위해 퇴사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IT 관련 일이다 보니 잦은 오버타임으로 소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회사가 경영 실적이 악화되면서 일부 팀들이 실적 부진에 따라 공중 분해가 되면서 김씨의 재취업을 위한 퇴사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김씨는 “또 다른 감원이 있을 것이란 소식이 사내에 돌고 있는 데다 오라는 곳도 예전에 비해 크게 줄어서 딱히 없다”며 “이제 재취업은 고사하고 ‘이번엔 내 차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현재 있는 자리라도 보존해야 할 형편”이라고 말하며 씁쓸해했다.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에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으로 촉발된 경기 침체 우려 여파로 기업들의 구조 조정에 따른 정리 해고가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사무직 종사자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이 집중 해고의 타깃으로 떠오르면서 ‘화이트칼라 불황’의 공포가 엄습해오고 있다.
특히 빅테크 기업들을 포함한 IT 업계와 금융 업종 등 사무직 중심의 해고 바람은 거세다. 지난달 30일 배달 서비스업체 도어대시는 비용 절감 차원에서 1,250명의 직원을 해고한다고 밝혔다. 이보다 앞서서 메타는 전체 직원의 13%에 달하는 1만1,000명의 직원에 대한 정리 해고안을 발표했다. 대부분이 사무직이었지만 46%는 개발자와 엔지니어 등 기술직도 포함됐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도 역대 최대 규모인 1만 명의 직원 감원에 나섰다. 트위터는 일론 머스크가 인수한 직후 3,700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금융 중심지인 월가도 예외는 아니다. 시티그룹이 최소 50명을 해고했고, 바클레이스는 약 200명의 직원들이 회사를 떠났다. 화이트칼라 해고 열풍은 언론계로도 확산되면서 세계 최대 언론사인 CNN의 크리스 리히트 최고경영자는 “제한된 수의 개인에게 해고 통보를 할 것”이라며 대대적인 정리해고가 시작됐음을 알렸다.
화이트칼라 중심의 해고 바람은 곧바로 미국 일자리에 영향을 미쳤다. 민간 고용정보업체 오토매틱데이터프로세싱(ADP)에 따르면 지난 11월 미국 기업들의 일자리는 12만7,000개가 증가했는데, 전월인 10월 증가폭인 23만9,000개의 거의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전문사무직과 금융업에서 일자리가 큰 폭으로 줄어든 반면 레저 및 접객업에서는 오히려 일자리가 늘어났다.
화이트칼라 직종의 해고가 상대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에 인력이 과대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연방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2020년2월부터 올해 8월 사이에 법률, 회계, 컴퓨터 시스템 등을 다루는 전문사무직 고용은 104만 8,000건이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레저 및 접객업계와 같은 블루칼라 직종의 같은 기간 고용은 121만5,000건이 줄어들었다. 그만큼 일손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인력난이 상대적으로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기 침체 우려 속에 미국의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이 겪는 해고의 공포는 조금은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경기 침체가 오면 통상 현장 노동자와 생산직과 같은 육체 노동 중심의 ‘블루칼라’ 노동자가 먼저 해고의 타격을 입었던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과거 경기 침체기에는 건설 현장 노동자와 트럭운전사 등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해고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화이트칼라에 대한 감축이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남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