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웨스트고 학보 ‘바이캉 사가’ 성소수자 옹호 기사 탓 폐간당해
미국은 한국보다 성소수자(LGBTQ) 권리가 상대적으로 더 보호되는 나라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온 역사도 길다. 하지만 미국 역시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를 겨냥한 혐오와 차별이 존재한다.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를 억압하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5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미 네브래스카주(州) 한 공립 고등학교 학보가 최근 폐간됐다. LGBTQ 옹호 기사와 사설을 싣고 기자 이름 작성 원칙을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LGBTQ 차별과 언론 검열이라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26일 AP통신과 지역 신문 그랜드아일랜드인디펜던트 등에 따르면 네브래스카에 있는 노스웨스트고 학보 ‘바이킹 사가’가 6월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됐다. 1968년 창간해 올해 주 저널리즘 챔피언십에서 3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신문이지만 교육위원회의 폐간 결정에 문을 닫게 된 것이다.
폐간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우선 6월호 신문에 실린 ‘오해와 편견: LGBTQIA+’라는 기사와 플로리다주에서 통과된 ‘게이라고 말하지 마(Don’t Say Gay) 법’ 반대 사설이 문제가 됐다. 동성애 혐오의 역사를 담은 기사,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에 대한 일부 수업을 금지하는 플로리다 법안을 비판한 사설이 교육청과 교육위 고위 관계자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또 학생기자 중 한 명인 트랜스젠더 학생 마커스 페넬이 출생 시 이름인 ‘메건’을 쓰지 않으려 하자 학교 당국이 기자 이름을 임의로 바꾼 논란도 폐간의 다른 이유 중 하나였다.
노스웨스트고 관계자는 신문 인쇄 중단 결정을 설명하면서 “지난호 편집 내용에 대해 교육위와 교육감이 불만족스러워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 노스웨스트고 교육위 부회장 자크 메이더는 “우리가 보기에 적절하지 않은 콘텐츠를 통제할 수 없다면 신문을 폐간하자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그랜드아일랜드인디펜던트에 밝혔다. 어른들의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학생 기자의 꿈을 짓밟은 셈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네브래스카언론협회 변호사 맥스 카우치는 “학생 신문을 없애기로 한 결정은 학생들의 언론 자유 권리를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이 저널리즘 수업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선택권을 없애는 과정에 정당한 교육적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랜드아일랜드인디펜던트는 “학생들의 표현을 검열하는 것은 민주주의 가치에 역행하는 일”이라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1974년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로 ‘인쇄 매체가 자체 편집 내용을 결정할 수 있다’는 당연한 자유는 헌법으로도 보장되고 있다. 그러나 네브래스카에서는 인종 갈등 보도, 기사 사전 검토 등의 이유로 고교 학보 발간이 중단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워싱턴=정상원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