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속 식료품비 10% 이상↑·음식값도 급등,
실질임금은 되레 전년 대비 4.4% ‘뒷걸음질’ 고통
미국인들 ‘식비 다이어트’로 인플레 견디기 백태
지난 4일 북가주 샌호세의 코스코 매장 앞은 평일인데도 대낮부터 줄이 길다. 샤핑을 하려는 게 아니라 점심식사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이 주로 주문하는 것은 핫도그 세트다. 8인치 길이의 소고기 소시지가 들어간 핫도그와 20온스짜리 탄산음료 한 컵이 단돈 1달러50센터다. 1985년 출시 후 38년째 같은 가격이다.
중국계 에이미씨도 주문대 앞 식탁에서 핫도그 세트를 먹고 있었다. 그는 가족이 집을 비운 평일엔 1인분 식사 차리기가 번거로워 주로 외식을 하는데, 요즘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코스코에서 끼니를 해결한다고 했다. 그는 “자주 가던 쌀국수 식당이 가격을 11달러에서 13달러로 올렸다”며 “세금과 팁까지 하면 15달러가 넘는 가격”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40년 만에 온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견뎌야 하는 미국인들은 ‘식비 다이어트’를 위해 분투 중이다. 지난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를 품목별로 보면, 1년 만에 41.6% 폭등한 에너지 다음으로 많이 오른 게 바로 음식이다. 식료품 가격(외식 포함)은 1년 만에 10.4%나 급등했는데, 마켓 식료품비가 12.2%, 외식비가 7.7% 올랐다.
식비가 올랐더라도 급여가 그만큼 상승했다면 큰 부담은 안 될 텐데, 실상은 1년 이상 물가상승률이 임금상승률을 압도하며 평균적인 미국인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가난해지는 중이다. 연방 노동통계국이 내놓은 6월 임금 통계를 보면,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미국 근로자의 시간당 실질임금은 1년 전보다 4.4% 하락했다. 미국 근로자의 시간당 실질임금 상승률은 지난해 4월 마이너스로 돌아선 뒤, 14개월 연속 뒷걸음질치는 중이다.
일단 미국인들은 외식 지출을 부쩍 줄이고 있다. 햄버거 체인 맥도널드와 멕시코 음식 체인점 치폴레는 최근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소비자들이 매장 방문 횟수를 줄이고, 보다 저렴한 메뉴로 옮겨가고 있다”고 밝혔다.
치폴레에선 5월 중순부터 연소득 5만 달러 이하 손님의 발길이 뜸해졌고, 맥도널드에선 세트 메뉴 대신 단품 햄버거를 선택하는 저소득층 손님이 늘었다고 한다. 고물가 상황에서 실적이 거의 줄지 않았던 패스트푸드 체인마저도 타격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천원샵’과 비슷한 달러스토어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인마켓에 따르면, 6월 미국 내 달러스토어 체인에서의 식료품 평균 지출액은 지난해 10월보다 71%나 늘었다. 같은 기간 일반 식료품점 지출액은 5% 감소했다.
실제로 지난 3일 방문한 달러트리(Dollar Tree) 매장에선 견과류, 밀가루 제품, 물, 각종 음료뿐 아니라 냉동 식품까지 팔고 있었다. 가격은 대체로 개당 1.25달러고, 신선·냉동식품의 경우 5달러까지도 있다. 30년 넘게 대부분 제품의 가격을 1달러로 유지해 온 달러트리는 인플레이션을 이겨내지 못하고 작년 10월 가격표를 1.25달러로 바꿔 달았다. 퇴근길에 장을 보러 달리트리에 들렀다는 레이먼씨는 “마트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지만, 여기서 살 수 있는 품목이라도 아껴 보고자 왔다”며 음료와 과자 등을 바구니에 가득 담아갔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료품에 대한 관심도 늘었다. 가까운 식료품점의 유통기한 임박 식품을 할인 가격에 구입할 수 있도록 중개하는 앱 ‘플래시푸드’는 미국 동부와 캐나다 일부 지역을 거점으로 운영하다가 6월부터 캘리포니아까지 진출했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