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급등에 한숨 깊어지는 한국 기업들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어서는 등 환율 급등에 기업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통상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환율 상승) 수출기업에는 호재이지만 원자재 수입 비용이 증가해 원가 부담이 가중되는 데다 외화부채가 높은 기업들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기 때문이다.
특히 대한항공의 경우 최근 3개월 사이 특별한 재무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외화평가손실이 4100억 원가량 늘어났다. 원·달러 환율이 3월 말 1,200원에서 최근 1,300원대로 높아지면서 외화 표시 부채 부담액이 급증한 것이다. 대한항공의 순외화부채는 약 41억 달러로 환율이 10원 상승하면 약 410억 원의 외화평가손실을 입는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항공·자동차·석유화학 등 기업들의 이익이 큰 폭으로 줄어들 것이 예상된다. 특히 환율 상승이 장기화되면 최종 제품·서비스 가격도 동반 상승해 물가 상승을 자극할 우려가 커 소비 위축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아시아나항공은 3월 기준 환율(약 1,210원) 대비 현재 환율이 100원가량 오른 상태가 분기 내내 유지되면 세전순이익이 3,000억 원가량 감소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항공사는 유류비와 항공기 대여료(리스비), 영공 통과료 등에 대해 달러 결제를 진행하기 때문에 원화 약세가 이어지면 영업이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기간 여객기를 화물기로 전환해 영업이익을 방어한 대형항공사(FSC)는 그나마 다행이다. 2년 넘게 적자에 허덕인 저비용항공사(LCC)의 부담은 더 크다. 제주항공은 지난 1분기에도 789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진에어(-464억 원) △에어부산(-362억 원) △티웨이항공(-390억 원)도 상황은 비슷하다.
환율 부담에 따른 항공 업계의 이익 감소는 소비자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항공 업계 관계자는 “항공 티켓 가격 책정 기준은 계절성(성수기·비수기) 요소와 환율이 변수”라며 “현재처럼 환율 상승이 장기화되면 연말 항공권 가격 역시 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고환율은 자동차 업계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생산량의 65%를 해외시장에 판매할 정도로 수출 비중이 높아 환율이 상승하면 환차익이 오르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악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주요 시장의 소비가 침체될 수 있고 원자재 구매 비용도 높아져서다.
현대차도 3월 말 대비 현재 환율이 8%가량 오른 상태가 계속 이어지면 법인세비용 차감 전 순이익이 1,000억 원 가까이 감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사태로 원자재 가격이 오른 상황에서 환율마저 상승하면 자동차 생산원가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는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져 수요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게다가 해외에서 국산차와 직접 경쟁하는 일본 자동차 업계가 엔저 현상으로 가격 경쟁에서 국내 업계보다 앞설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석유화학 업계의 고심은 날로 커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계기로 지속되고 있는 유가 폭등에 석유화학제품의 기초 원료로 쓰이는 나프타 가격이 함께 뛰면서다. 나프타는 원유에서 정제돼 나온다. 환율 상승으로 더 높은 가격에 나프타를 들여오기 때문에 부담 압박의 요인이 된다.
올해 1분기 나프타 국제가격은 톤당 평균 884달러로 2014년 이후 최고 기록을 경신해 나프타분해시설(NCC) 업체들의 수익성이 크게 둔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