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 경제전망 보고서… 인플레와 전쟁 주목
세계 경제가 물가는 오르고 경기는 가라앉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면서, 직전 스태그플레이션 시기인 1970년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그때보다는 사정이 양호하다는 관측도 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중앙은행이 정책 신뢰성을 확고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세계은행(WB)의 최근 경제전망에 따르면 1974년 스태그플레이션 당시 오일쇼크 등 공급 충격 속에 전 세계 물가상승률은 16.9%까지 치솟았다. 이후 1980년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의 강력한 통화 긴축정책의 결과로 극심한 인플레이션은 가라앉았다.
하지만 올해 들어 코로나19 경기부양과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상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 공급망 혼란 등이 겹치면서 5월 소비자 물가지수 인상률이 2008년 이후 최고치인 8.6%를 찍었다. 게다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1.5%포인트 내린 3.0%로 제시하고 세계은행은 경제성장 전망치를 4.1%에서 2.9%로 낮추는 등 성장도 둔화하고 있다.
현재는 주요 선진국들이 장기간 통화 확장정책에 이어 공급 충격을 맞이했고 세계적 성장 둔화와 인플레이션이 함께 발생했다는 면에서 1970년대와 비슷하다는 게 세계은행의 평가다. 게다가 빚에 허덕이는 개발도상국들이 당시처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유동성 회수에 취약한 상태라는 것이다.
다만 지금은 1970년대보다 물가상승률의 절대적 수치가 낮고, 임금 상승이나 실업률도 당시보다는 양호하다는 반론이 존재한다. 게다가 현재는 각국 중앙은행이 물가 목표치를 발표하는 등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 정책 신뢰를 구축해왔다는 게 세계은행 설명이다. 이를 통해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리라는 기대 심리도 1970년대보다 더 잘 잡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OECD도 중앙은행이 과거보다 기대 인플레이션 안정의 중요성을 더 잘 이해하고 여기에 집중하고 있으며, 대다수 중앙은행이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물가안정 목표를 명시적으로 내세우고 있다고 봤다. 또 원유 가격 상승에 따른 충격의 강도도 1970년대보다 약하고 노동시장이 유연화된 점 등도 다르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폴 볼커 당시 미 연준 의장이 1981년 기준금리를 무려 19%까지 올려 가까스로 물가를 잡았다. 하지만 그간 각국 중앙은행의 정책 신뢰성이 개선된 만큼 이번에는 당시 같은 ‘극약처방’ 없이도 해결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부분이다.
게다가 중앙은행들이 물가 안정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게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의 교훈이라는 게 세계은행의 설명이다. 세계은행은 그러면서도 추가적인 공급 충격으로 인플레이션 기대를 자극할 가능성이나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을 유지할 능력에 대한 신뢰를 잃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해까지 인플레이션에 대해 ‘일시적’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다 문제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최근 물가 대응에서 오판을 시인하는 등 당국에 대한 신뢰가 일부 훼손된 상태다. 미국 고위 당국자들이 지속적으로 물가가 최우선 정책 과제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시장 일각에서는 여전히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 방침에서 후퇴할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한편 세계은행은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경기침체 없이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성공하더라도 개도국의 상황은 녹록지 않을 것으로 우려했다. 개도국은 여전히 물가 상승에 따라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민감하게 움직이며, 실제 남아시아와 중남미를 비롯해 유럽과 중앙아시아 지역의 개도국에서 코로나19 이후 인플레이션과 기대 인플레이션이 올라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