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어디까지 가나
주요 산유국들의 증산 소식도 유가 상승세를 꺾지는 못했다. 증산에 회의적이던 사우디아라비아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가 원유 생산을 50%가량 늘리기로 했지만 원유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평가됐다. 시장에서는 이란과의 핵 협상 타결이나 자연스러운 수요 감소가 없는 한 유가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지난 2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회동한 OPEC+ 산유국 석유장관들은 7~8월의 원유 증산분을 종전의 43만2,000배럴에서 64만8,000배럴로 50%가량 늘리기로 합의했다. 앞서 OPEC+는 코로나19로 원유 수요가 급감했던 2020년 4월 회의에서 전체 원유 생산량을 매달 하루 580만~970만 배럴 감축하기로 했다. 이후 원유 시장이 코로나19 초반의 급락세에서 벗어나자 OPEC+는 지난해 7월 기존 감축 계획을 계속 추진하되 월별 생산량을 43만2,000배럴 늘리는(증산) 방식으로 감산 폭을 줄이기로 합의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기존 방침보다 증산 규모를 20만 배럴 정도 더 늘리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 호전에 대한 외교가의 기대와 달리 시장 분위기는 냉랭하다. 지난 3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7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장보다 2달러(1.71%) 오른 배럴당 118.8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 근월물 가격은 지난 주에만 3.3% 올랐다. 주간 상승률은 지난 5월6일로 끝난 주간 이후 가장 크다. 유가는 6주 연속 올랐으며, 해당 기간 16.80달러(16.46%) 상승했다. 유가가 6주 연속 오른 것은 8주 연속 상승했던 올해 2월 11일로 끝난 주간 이후 가장 길다.
우선 원유 부족분을 메우기에는 이번 증산량이 턱없이 모자라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줄어든 러시아산 원유 공급량은 하루 100만 배럴 수준으로 OPEC+가 7~8월에 하루 20만여 배럴을 추가 증산해도 공급 부족분의 5분의 1 정도밖에 채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국 내 원유 재고가 빠르게 줄고 있다는 점도 가격 상승 압력으로 작용했다. 연방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5월 넷째 주 원유 재고는 전주보다 506만8,000배럴 줄었다. 직전 주 감소분이 102만 배럴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재고 소진 속도가 가팔라졌다. 씨티그룹은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서방의 제재가 강도를 더하는 와중에 중국의 봉쇄 완화와 세계의 여름 휴가철을 맞아 원유와 휘발유 수요가 늘고 있다”며 증산 효과보다 유가 불안 요인에 따른 영향이 더 크다고 분석했다.
산유국들의 증산 여력에 대한 의문도 나온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OPEC+ 중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가 각각 하루 116만, 107만 배럴의 생산 여력을 가졌을 뿐 콩고나 알제리·앙골라 등 나머지 국가의 경우 하루 수만 배럴에 불과하다. 데미안 쿼발린 골드만삭스 분석가는 “증산할 수 없는 러시아 외에 대다수 국가들이 기존 증산 목표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씨티그룹은 OPEC+의 실제 증산량이 사우디와 UAE·쿠웨이트·이라크에서 하루 총 13만 2000배럴 수준에 그칠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라 월가에서는 국제 유가가 앞으로도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올 하반기 브렌트유 가격을 씨티은행은 배럴당 125달러, ING그룹은 122달러로 각각 전망했다. 전날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175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