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백화점 매출늘고 서민층 마켓 매출 급감
치솟는 인플레이션 속에 미국 소매 업체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미국 서민층 대다수가 찾는 월마트와 타깃, 저가 의류 업체들의 이익은 급감하는 반면 고소득층이 주고객인 백화점이나 초저가 제품을 판매하는 1달러숍의 실적 호조가 두드러진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소비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6일 경제 방송 CNBC에 따르면 백화점 체인 메이시스는 이날 1분기 순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3.6% 급등한 53억 5000만 달러에 달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2억 8600만 달러로 2배 이상 불어났다.
고유가와 인건비 증가로 최근 반 토막 난 순익 실적을 공개한 타깃이나 30% 가까이 하락한 월마트 등과 대비된다. 특히 메이시스 계열의 고급 브랜드인 블루밍데일은 1분기 매출이 28%, 럭셔리 뷰티 체인인 블루머큐리는 25%나 늘었다.
아예 초저가 제품을 취급하는 1달러숍도 선전했다. 달러트리는 1분기 동일 매장의 매출이 11.2%나 증가했다. 달러제너럴은 매출이 0.1% 줄면서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지만 연간 전망치는 상향 조정했다.
전반적인 소비 지표도 꺾이지 않고 있다. 이날 나온 1분기 소비자지출 잠정치는 3.1% 증가로 속보치(2.7%)를 웃돌았다. 의회예산국(CBO)은 올해 미국 성장률 전망치를 3.1%로 제시하면서 경기 침체 없이 물가를 잡을 수 있다는 낙관적 시각을 보였다.
케이시 보스찬치치 옥스퍼드이코노믹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가계와 기업의 대차대조표는 전반적으로 양호하며 경기 침체를 일으킬 정도의 불균형이 없다”며 “개인 소득과 기업의 수익 흐름도 탄탄한 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소비 시장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하다. 이날 증시 마감 후 실적을 내놓은 의류 브랜드 갭(GAP)은 1분기 동일 매장 매출이 전년 비 11%나 급감했다고 밝혔다. 갭의 대표적 저가 브랜드 올드네이비의 매출은 22%나 빠졌다. 회사의 1분기 순손실은 1억 6200만 달러로 지난해 1억 6600만 달러 흑자에서 적자 전환했고 34%나 늘어난 재고는 2분기에 더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소니아 싱걸 최고경영자(CEO)는 “올드네이비의 타깃인 저소득층이 인플레이션으로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저가 의류 브랜드 아메리칸이글 역시 이날 시장의 기대에 못 미치는 매출과 순이익 실적을 내놓았다. 앞서 월마트와 타깃·홈디포 등 유통 업체들이 부진한 실적을 발표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이렇다 보니 고물가로 소비가 양극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저소득층은 소비 습관을 억제하는 반면 고소득층은 맞춤 정장과 명품 옷·신발 등을 사들였다”며 “고객들 사이에서 (소득 수준에 따른) 격차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1달러숍의 매출 증가 역시 소비자들이 가격 부담 때문에 더 싼 제품을 찾는다는 뜻으로 볼 수 있어 긍정적 신호는 아닌 것으로 해석된다.
메이시스의 제프 제네트 CEO는 “소비자들이 여전히 소비를 하지만 역풍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며 “중산층과 고소득층은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덜 받고 있지만 가계소득 7만 5000달러 이하인 저소득층은 덜 비싼 제품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