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 국가들 속출할 것” 국제기구 수장들 경제비관론
명사들이 모여 세계의 미래를 논하는 자리인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WEF·다보스포럼)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후폭풍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경제계 거물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타격이 특정 국가나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전 세계에 걸쳐 안보 위협과 기아, 경기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고 입을 모아 경고하고 나섰다.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의 조지 소로스 회장은 24일 다보스포럼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제3차대전의 서막”이라며 “이번 전쟁으로 자유 문명이 붕괴할 수도 있으며 이를 지킬 수 있는 최선이자 유일한 방법은 서방이 (블라디미르) 푸틴의 군대를 물리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로스 회장은 “푸틴과의 협상은 기대하기 어렵다”며 “러시아는 유럽이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유럽으로 가는) 가스를 차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러시아와 중국 등 억압적 정권이 세를 불리고 있는데 이는 개방 국가들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라며 중국을 싸잡아 비판했다.
경제 분야에서도 국제기구 수장들을 중심으로 전쟁에 따른 비관론이 대두됐다. 아힘 슈타이너 국제연합개발계획(UNDP) 사무총장은 “전쟁으로 촉발된 고물가와 고금리로 스리랑카처럼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지는 국가가 70여 개국에 이를 것”이라며 “선진국들은 전쟁의 여파로 이들 국가에 원조할 여력조차 없다”고 토로했다. 마크 맬럭브라운 오픈소사이어티 의장 역시 “에너지·식량·부채라는 세 개의 머리를 달고 있는 히드라가 수많은 개발 국가의 가계와 정부를 붕괴시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러시아가 의도적으로 글로벌 식량난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러시아는 곡물 창고를 폭격하거나 밀과 해바라기유 운반선을 막고 있다”며 “국제사회가 러시아의 블랙 메일(협박)에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해 우크라이나가 영토 일부를 러시아에 넘겨야 한다는 발언을 해 구설에 올랐다. 키신저 전 장관은 “이상적으로 두 나라의 국경선은 지금 상태로 재편돼야 한다”며 “(그 이상은) 우크라이나의 자유가 아닌 러시아와의 새로운 전쟁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측은 즉각 반발했다. 이나 소브순 우크라이나 국회의원은 “전직 미 국무장관이 주권 영토 일부를 포기하는 것이 나라의 평화로 가는 길이라고 믿는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라며 “수치스러운 발언”이라고 꼬집었다. 키이우 국제사회학연구소가 이달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인의 82%는 ‘영토를 포기할 수 없다’고 응답했으며 전쟁을 끝내기 위해 영토의 일부를 포기하는 편이 낫다는 답변은 10%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