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음극재 ‘불꽃경쟁’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한국 배터리 업계가 충전 시간을 줄여주는 핵심 소재인 음극재의 성능을 강화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주행거리를 늘리는 소재인 양극재 기술 고도화에 성공하면서 앞으로는 급속 충전 기술 개발에도 속도를 내겠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특히 실리콘을 넣는 차세대 음극재가 주목받고 있다. 기존 음극재에 들어가는 흑연에 대한 중국 의존도를 탈피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증권사 애널리스트 간담회에서 음극재에 들어가는 실리콘 첨가 비중을 최대 10%까지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LG엔솔은 2019년부터 일찍이 독일 포르쉐 전기차 모델인 ‘타이칸’에 실리콘 5%를 첨가한 음극재를 공급해왔다. 기존 소재보다 실리콘 비중을 두 배로 높여 급속 충전이 용이하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음극재는 배터리 수명과 충전 시간을 좌우하는 주요 배터리 소재다. 그동안 가격이 저렴한 흑연 기반의 음극재가 주로 사용됐지만 용량을 대폭 늘려주는 실리콘 음극재가 차세대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실리콘 음극재는 흑연 음극재보다 에너지밀도가 약 25% 향상되고 급속 충전 속도가 50%나 개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리콘 음극재는 충·방전에 따른 부피 팽창이 심해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 개발이 중요하다. 장기적으로 음극재 내 실리콘 비율은 20%까지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SK온은 7% 수준의 실리콘 음극재를 적용한 배터리를 내년 상반기 출시될 미국 포드 전기차에 공급할 계획이다. 삼성SDI는 실리콘을 머리카락 두께 수천분의 1크기로 나노화한 뒤 흑연과 혼합해 하나의 물질처럼 복합화한 ‘실리콘탄소복합체(SCN)’ 기술을 개발해 확대 적용하고 있다. 현재 젠5를 비롯한 자사 배터리에 최대 7% 수준의 실리콘 음극재를 탑재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 배터리 셀 3사가 음극재 성능 향상에 나서면서 배터리 소재 업계도 더욱 분주한 모습이다. 양극재와 음극재를 동시에 양산하는 포스코케미칼은 저팽창 음극재 생산능력을 연 7,000톤에서 2년 내 3만5,000톤으로 늘리기로 했다. 포스코케미칼이 독자 기술로 개발한 저팽창 음극재는 안전성·수명·충전속도는 높이면서 가격은 낮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 1위 동박 생산 업체인 SKC는 영국 넥시온과 손잡고 2024년부터 실리콘 음극재를 양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배터리 소재를 신성장 동력으로 삼은 롯데케미칼은 미국에서 리튬메탈 음극재를 생산하기 위해 현지 스타트업인 소일렉트와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실리콘 음극재 등 차세대 음극재 적용 확대는 중국 중심의 배터리 공급망에서 탈피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의 대중국 흑연 수입 비중은 90%에 육박한다. 중국은 저렴한 가격에 흑연 소재를 만들어 전 세계 흑연 생산의 60~70%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아직 전체 음극재 중 실리콘 음극재의 비중은 1% 남짓에 불과해 보편화되기에는 수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2027년이 돼야 10%대의 점유율을 기록할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