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부, 중고차 시장 진출 가이드라인
현대차·기아, 내년 5월부터 판매업 개시
한국 완성차업체 중 가장 먼저 중고차시장 진출을 선언한 현대차·기아가 당초 계획보다 1년 늦어진 내년 5월부터 중고차시장에 진출하게 됐다. 중고차업계와 상생을 위해 자체 제한한 시장점유율도 하향 조정할 전망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8일 중소기업사업조정심의회(심의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최종 권고안을 현대차·기아와 중고차 판매업계에 권고했다. 완성차업계 진출을 유예하고 단계적 진입제한 조치를 부여해달라는 중소기업의 요구를 대폭 반영함으로써 중고차 사업자의 충격을 완화한 조치로 풀이된다.
심의회 권고안은 크게 4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현대차·기아의 중고차판매업 사업개시 시점을 1년 연기했다. 다만, 내년 1~4월에는 각각 5,000대 이내에서 인증중고차 시범판매가 허용된다. 또 중고차 판매대수는 2024년 4월까지 현대차 2.9%, 기아 2.1%로, 2025년 4월까지 현대차 4.1%, 기아 2.9%로 2년 간 제한된다.
이와 함께 현대차·기아는 신차를 구매하려는 고객이 기존 중고차 매입을 요청할 때에만 매입하도록 했다. 끝으로 현대차·기아가 매입한 중고차 중 인증중고차로 판매하지 않는 중고차는 경매의뢰하고, 이 때 경매 참여자를 중소기업들로 제한하거나 중고차 경매사업자에게 경매의뢰하는 대수가 전체 경매의뢰 대수의 50% 이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중기부 소상공인정책실장과 산업통상자원부·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 업계·학계 관계자 등 총 10명이 참석한 이날 심의회에선 현대차·기아 등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 판매 개시 시점과 중고차 매입 범위, 판매 기준과 범위(품목·수량 등) 등을 놓고 격론이 벌어지며 당초 예정된 시간보다 2시간40분 늦게 마무리됐다. 심의회는 전문기관 2곳이 수행한 현대차와 기아의 중고차 시장 진출로 인한 ‘중소기업의 피해 실태조사’ 결과를 보고 받고 양측의 의견을 청취한 뒤 위원들간의 토론으로 권고안을 도출 및 의결했다.
심의회 위원장을 맡은 조주현 중기부 소상공인정책실장은 “그간 오랜 논의를 바탕으로 ‘중소기업의 사업활동 기회’를 실질적으로 확보하면서도 중고차 시장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조화로운 방안을 찾기 위해 많은 고심을 했다”고 밝혔다. 현대차와 기아에 대해선 “중기부의 사업조정 권고를 수용하고 잘 준수해달라”고 요청했고, 중소기업계에겐 “3년이라는 사업조정 권고기간을 자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준비기간으로 삼아달라”고 당부했다.
심의회가 제시한 최종 권고는 행정처분으로서 법적 효력을 갖는다. 만약 권고안의 내용을 불이행하면 심의회는 이행명령을 내린다. 이후에도 불이행할 경우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앞서 중기부는 지난달 17일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를 열고 중고차 판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지 않기로 의결했다. 심의위는 당시 중고차 판매업 분야의 소상공인 비중이 다른 분야에 비해 낮고, 중고차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큰 점, 소비자 선택의 폭을 확대할 수 있는 점 등을 감안해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자 중고차 매매업계는 대기업의 시장 진출을 막기 위해 중기부에 사업조정을 신청했다. 사업조정 제도는 대기업이 사업을 인수 또는 개시함으로써 해당 분야 중소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미칠 우려가 있을 때 중소기업이 중기부에 신청할 수 있다. 정부는 규정에 따라 대기업에게 3년 이내에서 사업의 인수·개시·확장을 연기하거나, 품목·시설·수량 등을 축소하도록 권고할 수 있다. 이에 중기부는 지난 2월부터 당사자간 자율조정과 민간위원이 참여하는 자율사업조정협의회 등 총 6차례에 걸친 합의도출의 장을 마련했으나 양측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중고차업계는 “3년간 사업개시를 연기하고 이후에도 최대 3년 간 현대차·기아의 매입·판매를 제한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완성차업체가 판매하는 중고차 대수만큼 신차를 팔수 있는 ‘신차판매권’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현대차?기아는 사업개시 연기와 매입 제한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다만 판매비율에 대해선 올해 4.4%, 내년 6.2%, 2024년 8.8% 범위 내에서 자체적으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박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