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인상 속도조절론’ 제기
물가 치솟자 영국·캐나다 등 주요국 잇따라 금리 올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4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3년여 만에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한다.
연준이 오는 15∼1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여는 가운데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미 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시장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FOMC에서 연준이 현재 0∼0.25%인 기준금리를 0.25%포인트(25bp)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미 노동부가 10일 발표한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7.9% 급등했다. 40년 만의 최고치로 연준의 물가 목표치 2%를 대폭 웃돌았다.
이런 높은 물가상승률이 연준의 3월 금리 인상 전망을 확실히 굳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준은 2015∼2018년 기준금리를 점진적으로 인상했다. 연준이 금리를 올린 것은 2018년 12월이 마지막이었다. 그러다 2019년 7월부터 다시 금리를 내렸고 2020년 3월에는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제로(0)에 가깝게 파격적으로 낮췄다.
앞서 파월 의장은 지난 2일 하원에 출석해 3월 FOMC에서 "25bp 금리 인상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에는 연준이 3월에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할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베팅이 많았다.
골드만삭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연준이 올해 남은 7차례 FOMC 회의에서 매번 금리를 0.25%포인트 올릴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해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기준금리 인상을 향해 달려가던 연준은 어려운 처지에 빠졌다. 이에 따라 연준이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연준은 일단 계획대로 이달 금리 인상을 시작할 태세다. 금리 인상 지지론자들은 선제적으로 통화 긴축에 나서 고삐 풀린 물가를 잡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제임스 고먼 모건스탠리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포럼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지정학·경제적 리스크에도 연준이 물가 상승 압력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 인상 행진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준이 올해 0.25%포인트씩 4차례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파월 의장은 하원에서 25bp 금리 인상을 지지한다고 밝히면서 "인플레이션이 예상대로 내리지 않으면 향후 회의에서 그 이상으로 금리를 인상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는 칼럼에서 "실수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달 금리 인상 후 적어도 몇 달은 금리 인상을 일시 중단해야 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뚜렷해질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블룸버그는 공격적인 통화정책은 위험할 수 있다면서 경기침체가 닥치면 금리 인상을 되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플레이션 상승과 급격한 경기 둔화가 결합한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날 우려가 커짐에 따라 연준 등 각국 중앙은행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1970년대 오일쇼크(석유 파동) 시기보다 심한 '역대 최악'의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나타난 상황에서 세계 경제는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바클레이스와 JP모건체이스는 최근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1%포인트가량 내리고 대신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1%포인트 올렸다.
모건스탠리의 고먼 CEO도 파월 의장이 금리 인상을 신중히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경기침체는 피해야 한다"면서 "경기침체에 빠지면 스태그플레이션이 오고 이는 매우 나쁜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고물가에 비상이 걸린 다른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속속 통화 긴축으로 돌아서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10일 채권 매입을 3분기에 종료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ECB가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금리를 올리기 위한 발판을 닦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캐나다 중앙은행인 캐나다은행은 지난 2일 3년여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캐나다의 기준금리는 0.5%로 0.25%포인트 올랐다. 이로써 캐나다는 코로나19 이후 주요 7개국(G7) 가운데 영국에 이어 2번째로 기준금리를 올린 나라가 됐다.
캐나다은행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곡물 가격의 상방 압력이 거세졌다면서, 물가 상승률이 더욱 높아지고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캐나다의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1%로 목표치인 2%를 대폭 상회했다.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도 오는 18일 통화정책 회의에서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 침공 전에는 영국과 미국이 기준금리를 나란히 0.5%포인트 올릴 것으로 보는 투자자들이 많았다. 잉글랜드은행은 지난해 12월과 지난 2월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영국의 1월 CPI는 5.5%로 1992년 이후 가장 높았다.
필립 로우 호주중앙은행(RBA) 총재도 연내 금리 인상에 대해 "타당하다"고 최근 포럼에서 말했다. RBA는 광산 붐의 절정이었던 2010년 11월 이후 금리를 올린 적이 없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