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체들 ‘슈링크플레이션’ 현상 재등장
공급망 혼란과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면서 기업들이 소비자들 몰래 제품의 양과 질을 줄여 사실상 가격을 인상하는 소위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현상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8일 CNN비즈니스는 최근 들어 화장지 길이나 과자 크기를 줄이거나 음료수 용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원가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시키는 슈링크플레이션이 미국 내 제조업체 사이에서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가격도, 포장지도 그대로지만 포장 안에 든 내용물만 양이 줄거나 질이 나빠지는 현상을 말한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지난 2015년 영국 경제학자 피파 맘그렌이 제안한 용어로, 이후 온라인 상에서 인기를 끌면서 현재는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
CNN비즈니스에 따르면 프록터앤갬블(P&G)사의 차밍 울트라 화장지의 18롤 패키지의 경우 두겹의 화장지가 기존에 264장에서 244장으로 줄었다. 수퍼메가 화장지는 396장에서 396장으로 역시 감소했다.
키블러 쿠키의 칩스 디럭스는 패키지의 용량이 기존 11.3온스에서 9.75온스로 줄었다. 스포츠 음료인 케토레이도 기존 32온스의 용량이 28온스로 줄었다.
슈링크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는 데는 원가 상승에 따른 비용 부담을 줄이려는 제조업체들의 전략이 숨어 있다. 공급난과 인력난으로 식품 재료비나 인건비, 운송비 등이 급상승하면서 비용 부담이 커진 기업들이 가격 인상 대신 우회적으로 제품의 양이나 질을 줄여 비용 부담을 상쇄하는 것이다.
대용량 제품을 내놓는 방식도 있다. 흔히 ‘점보’ 사이즈 제품이 일반 크기의 제품보다 단위 가격이 쌀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오히려 소비자들의 이런 심리를 역이용해 단위 가격이 더 비싼 대용량 제품을 출시하는 기업들도 있다.
‘원플러스원’이나 무료 배송과 같은 판촉 인센티브를 줄이는 것도 가격을 은밀히 인상하는 방법 중 하나다.
슈링크플레이션 현상은 한인 마켓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게 ‘질소 과자’ 현상이다. 질소 과자는 포장지 크기에 비해 지나치게 내용물이 적은 과자를 일컫는 말이다. 과자를 장기간 보존하기 위해 봉지 안에 질소를 충전하면 과장 포장치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는 모습에서 나온 표현이다.
라면의 경우도 슈링크플레이션에 해당된다. 예전에 멀티팩에 5개 라면이 들어가 있었지만 한두업체들이 4개로 줄이면서 이제는 라면 멀티팩은 4개짜리가 대세로 굳어졌다. 가격은 그대로지만 사실상 개수가 줄면서 인상된 셈이다.
한 한인 마켓 매니저는 “해운 물류 정체 현상으로 물류비가 급등하고 원재료 가격도 상승하면서 비용 상승을 부담해야 하는 업체들의 고충도 이해된다”며 “하지만 용량이나 크기가 줄어들었다는 한인 소비자들의 불만도 크게 늘어나 이를 처리해야 하는 마켓의 고충도 있다”고 말했다.
<남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