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브넬 모이즈(53) 아이티 대통령 암살에 미국 사법당국 정보원들이 가담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식 요원 신분이 아닌 만큼, 현재로선 미국 정부와는 무관한 ‘개인의 일탈 행위’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미국 시민권자가 2명이나 체포됐고, 용의자 일부가 미국 정부를 위해 일했던 사실이 드러난 건 예사롭지 않다. 게다가 유력한 배후 인물도 플로리다주에서 20년간 거주했던 인물이다. 미국의 개입 의혹이 어떤 식으로든 불거질 수밖에 없고, 미 정부가 직접 규명하거나 해명해야 할 ‘진실’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더구나 용의자의 지인들은 아이티 경찰 설명과는 다른 증언들을 내놓고 있어 미스터리는 점점 불어나고 있다.
■DEA “정보원 가담” 확인… FBI는 함구
CNN방송과 로이터통신은 12일 “모이즈 대통령 암살 용의자로 체포된 아이티계 미국인 2명 중 1명이 과거 미 마약단속국(DEA) 정보원으로 일했다”고 보도했다. DEA도 “해당 정보원이 모이즈 대통령 암살 직후, DEA 연락책에 접촉해 왔다”며 “아이티에 파견된 DEA 요원이 ‘현지 당국에 투항하라’고 촉구했고, 국무부와 함께 그 정보원과 또 다른 용의자 1명의 투항 및 체포에 관한 정보를 아이티 정부에 제공했다”고 밝혔다. 암살범들은 7일 대통령 사저 침입 당시 DEA 요원으로 위장했는데, DEA는 “누구도 기관을 대신해 활동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용의자들 중엔 연방수사국(FBI)의 정보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FBI는 “기밀 정보를 얻기 위해 합법적 출처를 이용한다는 것 외엔, 정보원에 대해선 언급할 수 없다”며 신원 확인을 거부했다. 미국이 이 사건 조사 주체로 나서야 하는 이유는 더 있다. 아이티 경찰이 지목한 암살 주동자, 그의 의뢰로 26명의 콜롬비아 용병을 모집한 보안회사 ‘CTU’가 미 플로리다주에 근거지를 두고 있어서다.
CNN은 “아이티 당국이 공개한 수사 정보는 제한적이지만, ‘플로리다 관련성’ 언급이 점점 늘어난다는 건 암살 음모가 부분적으론 미국에서 시작됐다는 걸 보여 준다”며 “미 법무부가 (최소한) 미국인 용의자들은 직접 기소할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유력 주동자, 아이티 정계 진출 노려
전날 암살 배후자로 체포된 아이티 국적 크리스티앙 에마뉘엘 사농(63)의 정체를 둘러싼 의혹도 무성하다. 아이티 태생인 사농은 도미니카공화국의 ‘에우헤니오 마리아 데 오스토스 대학’과 미주리주 중서부침례신학교를 졸업한 뒤, 플로리다주에서 20년 이상 살았다. 2013년 플로리다주에 낸 파산신청서에선 자신을 의사이자 목사, 아이티 자선단체 이사라고 소개했다. 다만 플로리다주 보건부는 사농이란 이름으로 의사 개업 허가를 받은 사람은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 경호원 연루 의혹도
하지만 아이티 정계에 무명의 인물이나 마찬가지인 사농이 아무런 뒷배도 없이 대통령 암살을 계획했다는 건 미심쩍은 구석이 많은 게 사실이다. 지인들도 그가 대통령직을 차지하려고 살인까지 저지를 사람은 아니라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뒤베르제 교수는 “아이티에서 정치는 잔인한 스포츠가 됐다”며 사농의 무죄를 주장하는 편지를 지인들에게 보냈다고 했다. 이웃주민 스티븐 브로스도 “사농은 아이티를 도울 방법을 항상 고민했지만, 암살범이라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이티 내부에선 대통령 경호원들의 암살 가담 의혹도 제기된다. 아이티 유명 영화제작자인 레이첼 마글루아르는 “범인들이 어떻게 경호원을 다치게 하지도 않고 대통령 사저에 침입할 수 있었는지가 의문의 핵심”이라며 “사농에 초점을 맞추는 건 논점을 흐리려는 물타기”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