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시장이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구입 자금도 충분하고 대출 자격도 갖췄지만 치열한 경쟁 탓에 주택 구입에 실패하는 바이어가 속출하고 있다. 결국‘지금은 집을 살 때가 아니다’라는 심리가 퍼지며 주택 구입을 포기하거나 구입 시기를 미루는 바이어가 늘고 있다.
바이어들에게 불리한 상황을 악용한 일부 셀러들의 횡포도 주택 구입에 대한 자신감을 떨어트리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럴 때는 주택 구입 활동을 잠시 멈추고 경쟁이 덜한 시기에 재도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주택 구입 시기로 적절치 않다’미국인 최고조
경쟁 뜸해지는 연말이나 특정 휴일 노려야
◇ 쓴맛 두 번 본 뒤 ‘일단 소나기는 피해 가자’
경쟁이 덜 해 주택 구입 사정이 지금보다 나았던 작년 11월 전문직에 종사하는 한인 김 모 씨는 생애 첫 주택 구입에 나섰다. 경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운 좋게 LA 동부 지역의 한 매물 구입을 위한 에스크로를 열었다. 첫눈에 마음에 들어 구입하기로 했지만 에스크로를 진행하면서 자세히 점검하다 보니 뜯어고쳐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그래서 김 씨는 어렵게 성사된 주택 계약을 결국 취소하고 당분간 주택 구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해가 바뀌고 모기지 이자율이 빠르게 하락하면서 김 씨의 주택 구입 욕망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출퇴근을 고려해 직장 인근 아파트를 렌트하는 김 씨는 다달이 나가는 렌트비를 아끼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주택 구입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김 씨가 주택 구입에 재도전한 시기는 공교롭게도 1년 중 주택 시장이 가장 바쁜 봄철이었다.
김 씨는 봄철 주택 구입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주택 시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에이전트를 통해 집을 보러 가기로 일정을 잡았지만 보기도 전에 이미 에스크로를 오픈했다는 소식을 여러 차례 전달받았다. 출근 거리가 멀어지는 것도 감수하고 LA 동부 지역에 나온 매물에 큰 맘먹고 오퍼를 제출했다. 분명히 경쟁이 있을 거라는 판단에 매물이 나온 가격보다 조금 높은 가격에 오퍼를 제출하고 셀러의 반응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제출한 오퍼에 대한 답변은 없고 그사이 셀러가 매물의 가격을 무려 3만 달러나 슬그머니 올렸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화가 나기도 전에 너무 기가 막힌 셀러의 행위에 내 집 마련에 대한 김 씨의 기대는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 셀러 측 에이전트로부터 무려 15건의 오퍼가 제출됐고 이중 가격이 제일 높은 5건의 오퍼만 셀러가 고려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김 씨는 이후에도 다른 지역에 나온 매물을 몇 채 더 구경했지만 이미 주택 구입에 대한 마음이 사라진 뒤였다. 쓴맛을 두번이나 본 김 씨는 일단 ‘소나기는 피해 가자’는 생각에 잠시 휴식기에 들어가기로 했다. 때마침 직장 일도 바빠져 일단 경쟁이 가라앉을 것으로 기대되는 9월부터 내 집 마련을 위한 재도전에 나설 계획이다.
◇ ‘지금 집 사면 안돼’ 심리 최고조
내 집 마련에 대한 자신감을 잃는 경우는 김 씨뿐 만이 아니다. 매물 부족과 이에 따른 집값 급등으로 지금 집을 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미국인 비율이 최고치를 찍었다. 국영 모기지 보증 기관 패니메이가 최근 발표한 주택 구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이 주택 구입에 유리한 시기라고 생각하는 미국인 비율은 약 35%로 조사가 시작된 2010년 이후 가장 많아졌다. 반면 미국인 중 약 67%는 지금은 집을 살 때가 아니라 팔 때라고 답했다. 덕 던컨 패니메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소비자들은 매물 공급 부족에 따른 집값 급등 현상을 잘 알고 있고 이로 인해 주택 구입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집이 나오자마자 팔리는 현상도 주택 구입에 대한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온라인 부동산 정보 업체 질로우닷컴에 따르면 최근 시장에 나온 매물 중 약 47%는 불과 일주일 만에 오퍼를 받을 정도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질로우는 “지난해 촉발된 매물 부족 현상이 수요가 더 늘어난 올봄까지 해결되지 않아 주택 시장 과열 양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 여름 방학 직후인 노동절 연휴 공략해볼 만
일반적으로 봄철과 여름철은 1년 중 주택 거래가 가장 활발해지는 시기다. 이 시기에는 내 집을 마련하려는 바이어가 쏟아져 나오는 한편 주택 처분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려는 셀러도 늘어난다. 그런데 지난해 발생한 코로나 팬데믹이 전통적인 주택 시장의 모습을 180도 바꿔 놓았다.
집을 사려는 사람은 예년처럼 쏟아져 나오는데 집을 내놓으려는 사람은 자취를 감췄다. 목재 등 건축 자재비가 급등하면서 신규 주택 공급마저 제한되면서 올해 주택 시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바이어들 입에서는 주택 구입이 로또 당첨보다 힘들다는 하소연만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이에 부동산 전문가들은 불필요한 출혈 경쟁을 자제하기 위해서라도 주택 구입 시기를 조금 변경해볼 것을 조언한다. 전문가들은 일단 여름 방학이 끝난 직후인 노동절 연휴 기간을 주택 구입 시기로 제안한다. 온라인 부동산 정보 업체 리얼터닷컴의 대니얼 헤일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가을이 시작되는 노동절 연휴 기간의 구입 경쟁은 봄, 여름보다 다소 덜 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당장 주택을 구입할 필요가 없는 경우 조금만 인내심을 가진다면 곧 해 뜰 날을 볼 수도 있겠다. 코로나 방역지침이 완화되고 백신 접종자가 증가 추세로 조만간 집을 내놓는 사람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전국 부동산 중개인 협회’(NAR)에 따르면 주택 신축이 증가세로 올가을 신규 주택 공급량도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헤일 이코노미스트는 “경제 활동에 대한 제재가 풀리면 올해 안에 주택을 처분하려는 셀러들이 집을 내놓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파더스 데이’처럼 수요 일시 감소하는 휴일도 괜찮다
김 씨가 처음으로 주택 구입에 나섰던 연말도 치열한 구입 경쟁을 피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좋은 시기다. 연말까지 매물로 나와있거나 연말에 나오는 매물은 셀러들이 빨리 팔기를 원하는 사정이 있기 때문에 구매 계약이 비교적 수월하게 체결된다. 동시에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로 이어지는 연말 휴가철은 바이어의 주택 구입 활동도 뜸해지는 시기로 구입 경쟁도 덜하다.
특정 요일이나 특정 휴일을 공략하는 것도 경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대개 바이어들이 주말에 집을 보러 올 것으로 기대하는 셀러들은 주 중인 수요일과 금요일 사이에 집을 많이 내놓게 된다. 그런데 매물 검색이 뜸해지는 일요일 저녁 시간이나 월요일 오전 시간에 나온 매물은 다른 바이어들의 눈에 띄기 전에 먼저 가서 볼 수 있는 공략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며칠 뒤 다가오는 파더스 데이와 같은 휴일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 집을 보러 다니는 바이어 수가 일시적으로 감소하는 주일이다.
<준 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