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기자회견에 나선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 의장의 발언은 월가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는 2023년까지 지금의 제로금리를 동결하고 자산 매입 속도를 유지하기로 했다. 경제성장 전망은 6.5%로 지난해 12월보다 2.3%포인트 올라갔고 인플레이션 예상치도 2.2%로 0.4%포인트 뛰었지만 지금의 통화정책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지표상 경제 회복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이 확인된 만큼 통화 당국으로서는 시장 변화에 안테나를 바짝 세울 필요성이 커졌다. 실제 파월 의장도 일부 자산의 경우 가격이 확실히 높다는 경고도 내놓았다. 파월이 인플레이션 우려보다는 불확실성에 방점을 찍었지만 경제정책의 여지를 더 열어놓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릭 리더 채권 부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최근의 기업 이익 추이와 판매, 깜짝 실적은 경제 호황을 보여준다”며 “앞으로 몇 달 동안 시장은 연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반응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연준이 완화적 정책을 어떻게 거둬들일지에 대한 큰 유연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라고 진단했다.
파월 의장은 금리 인상 조건에 대해 “우리는 (정책 목표인 최대 고용과 관련해) 실업률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고용지표를 보고 있다”며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인 게 아닌 한동안 2%를 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연준이 단순히 인플레이션이 2%를 넘는다고 해서 금리를 올리는 게 아니라는 점을 못 박은 것이다. 이날 나온 연준의 경제 전망을 보면 에너지와 식료품처럼 변동성이 큰 물품을 뺀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인플레이션은 올해 2.2%까지 치솟는다. 2022년에는 2.0%로 다소 하락하지만 2023년에 다시 2.1%로 오른다. 파월 의장도 “앞으로 몇 달 동안 인플레이션이 높아질 것이며 기저 효과 외에 경제활동 재개로 인해 물가가 더 오를 수 있다. 생산이 이를 따르지 못해 공급이 제한된다면 더 그럴 것”이라며 평소보다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더욱 강조했다.
하지만 파월 의장은 금리 인상을 위해서는 고용 목표까지 달성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경제활동 재개에 올해 실업률은 4.5%로 지난 번 전망치보다 0.5%포인트 낮아지는 것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4%를 웃돈다. 실업률은 내년 3.9%를 거쳐 2023년에는 3.5%까지 내려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 실업률이 3.5%였음을 감안하면 고용지표는 2023년에야 연준의 기준을 충족한다. 더구나 지난주(3월7일~13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도 77만건으로 전주(71만2,000건) 대비 5만8,000건 증가했다.
파월 의장이 “앞으로 2~3년 동안은 불확실성이 크다”고 말한 것도 1차적으로는 완화적 통화정책 유지를 위한 근거가 되지만 거꾸로 보면 예상보다 경기가 빨리 좋아질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특히 파월 의장은 이날 자산 가격이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이라고 했다. 과도한 자산 가격 상승을 막기 위해서는 양적완화(QE) 축소와 금리 인상이 답이다. 내년과 2023년에 금리가 인상될 수 있다고 예상하는 FOMC 위원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 18명의 연준 위원 가운데 첫 금리 인상 시기로 2022년을 전망한 위원은 지난해 12월 1명에서 4명으로, 2023년은 5명에서 7명으로 각각 늘었다.
파월 의장은 ‘전망으로 움직이지 않고 숫자를 확인하고 가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시장이 원했던 오퍼레이션 트위스트 등 국채금리 상승을 완화할 어떤 정책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날 파월의 발언이 실제 경기회복이 보이는 시점에 슈퍼 비둘기 스탠스를 유지한 채 내놓을 수 있는 궁극의 립서비스였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연준이 처한 상황을 입체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당장 경기가 예상보다 더 빨리 개선되고 있고 조 바이든 대통령도 7월 4일까지 코로나19에서 자유로워지게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3조 달러 수준으로 예상되는 연구개발(R&D) 및 인프라 투자 계획도 나올 예정이다. 시장에서는 금리를 올리기 전 테이퍼링 카드가 먼저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미 국채 10년물 금리(수익률)는 18일 한때 1.74%를 찍으며 코로나 사태 전인 지난해 1월 24일 이후 약 1년 2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뉴욕=김영필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