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미래를 걸었던 반도체 설계회사 ARM홀딩스를 그래픽 칩 전문 기업인 엔비디아에 매각할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릿저널(WSJ)은 소프트뱅크와 엔비디아 간에 ARM 매각 협상이 곧 마무리될 예정이며 이르면 이번주 발표될 수도 있다고 12일 보도했다.
소프트뱅크와 엔비디아는 몇 달간 매각협상을 물밑에서 진행해왔다. 이번 거래는 현금과 주식을 섞은 방식으로 이뤄질 전망이며 매각 금액은 최저 400억달러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성사될 경우 올해 인수·합병(M&A) 건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며, 반도체 기업 M&A로는 역대 최대이다. 이번 거래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기업 M&A가 다시 진행되는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ARM은 사물인터넷(IoT) 기기에 탑재하는 칩을 주로 개발하는 회사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에 들어가는 모바일 중앙처리장치(CPU)를 사실상 독점 설계하는 회사다. 그래픽 칩 분야에서 선두주자인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하면 명실공히 대형 반도체 설계·제조업체가 될 수 있다.
ARM을 인수하게 되면 엔비디아는 대형 반도체 설계·제조업체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FT는 “최근 인텔을 따라잡으며 세계 최고의 가치 있는 반도체 제조업체가 된 엔비디아가 이번 M&A로 반도체 산업의 중심에서 위치가 더 공고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엔비디아 GPU 수요가 급증하며 올해 주가만 100% 이상 급등했다.
ARM의 인수로 고사양에 초점을 맞췄던 엔비디아의 제품 구성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FT는 분석했다. 엔비디아는 PC 게이머나 자율주행자 개발자, 암호화폐 채굴자 등 고사양이 필요한 고객에게 GPU를 판매해왔다.
소프트뱅크는 2016년 ARM을 320억달러에 인수한 바 있었다. 2016년 인수 당시에 너무 비싸게 샀다는 비판이 많았지만 4년 만에 80억달러가량 차익을 남기고 다시 판 셈이다.
손 회장은 ARM 인수 당시 “바둑으로 치면 50수 앞을 보고 인생 최대 베팅을 했다”고 언급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손 회장은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 결합이 가져올 미래에 주목해 이 회사를 인수했다. ARM이 소프트뱅크 미래를 좌우할 핵심 두뇌가 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렇게 공을 들였던 ARM을 매각하게 된 것은 코로나19에 따른 상황 변화가 원인으로 꼽힌다. 예상치 못한 팬데믹 상황에 주요 투자가 실패로 돌아가고 수세에 몰리자 알짜 자산을 매각하는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소프트뱅크는 비전펀드를 통해 진행했던 투자가 연이어 실패하면서 투자자들로부터 구조조정 압박을 받아왔다.
변수는 남아 있다. 영국 정부와 국내의 반대 여론이다. 야당인 노동당은 “이번 인수가 공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영국 일자리가 해외로 빠져나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영국 정부도 “이번 인수가 영국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관련 조사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