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
지난 독립기념일 주말, 엘리트 투어가 마련한 샌디에고 토리 파인스 골프 여행은 소소한 즐거움으로 채워졌던 나의 행복한 삶을 빼앗아 간 코로나 희생에 대한 진한 보상이었다.
행복한 삶이란 자유인가 보다.
하루하루 답답함을 달래기 위해 나섰던 주말 골프 여행은 자유로운 삶의 소중함을 깨우쳐 준 값진 시간이었다. 한 홀 한 홀마다 태평양이 내려다 보이는 환상적이고 그림 같은 코스가 매력을 더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비취 빛 하늘, 그리고 코스를 따라 하늘을 수놓은 오색 행글라이더 행렬은 나에게 자유와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동시에 선사했다. 누군가 토리 파인스가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죽기 전에 한번은 라운드 해봐야 할 위시 리스트(Wish List) 골프코스라 했던가. 클래식하고 모던한 스타일이 조화를 이룬 클럽하우스 앞 멋진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귀족적인 대접을 아끼지 않았다.
첫 날 North 코스
엘리트 투어 일행 19명이 탈 카트가 다른 방문객들과 다르게 클럽하우스 앞에 일렬로 정렬돼 있고 스타터가 나와 VIP 대접을 해주어 어깨가 으쓱해졌다. 스코어 카드와 안내문, 김밥과 물이 세심하게 준비됐다.
1번 홀 티오프에 앞서 엘리트 투어 빌리 장 사장의 기념사진 촬영. 같이 간 우리 팀 8명의 추억이 담기는 순간이다.
티끌 하나 없는 페어웨이가 지평선위에 초록색 물감을 뿌려놓은 캔버스처럼 끝이 없다. 지름 4.27cm, 무게 45.93g의 하얀 볼이 창공을 날아간다. 모두가 굿 샷을 외쳤다. 지긋지긋한 코로나도 없었고 우울함도 없었다. 오직 자유와 행복만이 가득했다.
수년전 탐 와이스코프가 노스 코스를 완전 리모델링하고 단장해 코스가 업그레이드 됐다고 한다. 태평양을 가렸던 나무들도 정리해 18홀 전체에서 태평양이 보이도록 했다. 노스 코스는 챔피언 티(7,258야드), 브라운 티(6,781야드), 그린 티(6,343 야드), 화이트 티(5,847야드), 옐로우 티(5,190)로 사우스 코스에 비해서는 짧지만 결코 짧지 않은 코스다.
홀 하나하나가 토리파인 나무와 어울려 셀폰 카메라만 켜면 모두 한 폭의 그림으로 변했다. 그 중에서도 15번(177야드 파3)은 나의 30년 골프 경력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준 감동의 홀이었다.
티 박스에서 바라 본 그린은 태평양을 배경으로 그려진 한 폭의 풍경화였다. 눈부신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가슴 깊숙이 파고든다. 일상생활 속에서 나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던 미움도 원망도 서러움도 모두 씻어갔다. 티샷이 온 그린을 놓쳤지만 스코어는 보기, 다음 여행을 기약하면서 아쉬운 발걸음으로 그린을 나섰다.
어느새 18번 홀이 끝났다. LA와 달리 다이닝 인이 가능한 샌디에고 한식당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빌리 장 사장이 준비한 맛있는 김치와 함께 가족 또는 일행 2-3명으로 짜여진 오붓한 저녁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유럽으로, 동남아로 경험했던 어떤 골프 여행보다 진한 자유를 느꼈다.
둘째 날, South 코스.
티오프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클럽 하우스에 들어서니 2008년 US 오픈 챔피언 타이거 우즈 함성이 들리는 듯 했다. 타이거 우즈와 로리 매킬로이, 제이슨 데이 등 유명 선수들의 대형 사진들이 클럽 하우스 벽면을 장식했다. 선수들 사진 앞에서 몇 장의 기념사진을 찍었다.
내년 2021년에 121회 US 오픈이 또 이곳에서 열린다. 프로 샵에는 벌써 121회 US 오픈 기념품들이 진열돼 있다. 기념으로 티셔츠를 구입했다.
일행중 한 명은 그동안 노스 코스는 몇 번 라운드해 봤으나 사우스는 예약이 너무 힘들어 20년이 넘었다며 이번 여행도 사우스 코스에 라운드해보기 위해 참가했다고 말한다.
스코어 카드를 보니 사우스 코스는 US 오픈 메인 코스답게 역시 길었다. 챔피언 티(7,802야드), 브라운 티(7,015야드), 그린 티(6,635야드), 화이트 티(6,145야드), 옐로우 티(5,373야드)다. 노스 보다 챔피언 티는 무려 600야드가 길었고 다른 티는 200-300야드 길었다.
1번 홀, 풋볼 구장처럼 잘 정돈된 페어웨이가 태평양을 배경으로 펼쳐져 있다. 코스 군데군데 서있는 파인트리들이 골퍼들을 환영하듯, 애환을 달래주듯 말없이 서있어 정취를 더해주었다.
러프도 소문대로 역시 질기고 길었다. USGA는 US오픈 러프 길이를 최소 발목(Ankle)높이인 4인치(10.16cm) 이상으로 요구하며 어떤 골프장은 12인치까지 높다고 하니 PGA 선수들의 어려움을 짐작케 한다.
13번 홀, 챔피언 티 길이가 621야드의 파5 홀이다. 우리 일행은 그린 티에서 라운드를 했지만 챔피언 티로 발걸음을 옮겼다. 까마득히 먼 곳에 있는 그린이 손톱만한 크기로 보일락 말락 시야에 들어왔다. 노란 깃발은 점으로 보였다. 티 박스 뒤로는 태평양 절벽이다.
한 참을 보고 있노라니 빨리 오라는 일행의 아우성으로 100야드를 뛰어 그린 티 박스로 왔다. 그린 티는 514야드 파5.
그린 티에서도 그린이 가물가물 멀리 보였다. 티샷을 하고 페어웨이에서 보니 그린 앞에 그림처럼 펼쳐진 벙커의 전경이 장관이다. 그린 앞 가운데 15야드 넓이의 페어웨이 양쪽으로 3개씩, 모두 6개의 벙커가 잠자리 세 마리를 겹쳐 놓은 듯 20야드 간격으로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그린 뒤에도 벙커가 있어 그린 앞뒤로 모두 7개의 벙커가 도사리고 있다.
네 번째 샷이 그린과 붙어있는 80도 경사의 벙커에 볼이 박혀 두 번 만에 탈출했다. 스코어 카드에 기록한 트리플 보기보다 더 값진 것은 도전과 경험이었다.
마지막 홀인 18번 홀 티 박스에서 일행과 기념 촬영을 했다.
PGA 선수들의 운명이 갈리는 곳이란다. 그린 앞에는 지경 30야드의 호수가 있는데 자칫 실수하면 볼이 호수로 들어가 운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린이 호수 쪽으로 빠른 경사로 돼있기 때문에 백스핀이 먹히면 볼이 그린에 떨어졌다하더라도 굴러서 호수에 빠지게 된다.
그린 앞 호수를 눈앞에 두고 70야드를 남겨둔 상태에서 네 번째 샷이다. 어디를 공략해야 하나? 하는 수많은 상상이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결국 헤드업으로 뒤땅과 함께 볼은 호수로 직행했다. 아쉬움보다 ‘내 볼도 이 호수에--’ 하는 여유로 라운드를 마쳤다.
가라앉지 않은 흥분 속에 집에 도착하니 사진작가인 빌리 장 사장이 찍은 멋진 경치사진과 부끄러운 스윙 스냅 사진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꿈같은 골프여행은 자유이며 감동이며 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