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에 감염된 2기 이상 진행성 위암 환자도 위 부분절제술 후 제균치료를 받으면 생존율이 높아지고 암 재발 위험은 감소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김나영 교수·최용훈 임상강사 연구팀이 2003~2017년 위 부분절제술을 받은 조기·진행성 위암 환자 가운데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된 1,031명을 제균치료 성공군, 제균치료를 받지 않았거나 치료에 실패한 군(이하 ‘비제균군’)으로 나눠 생존율·사망률·암 재발률 등을 비교분석한 결과다.
조기 위암은 림프절 전이 여부와 관계없이 암이 위 점막층 또는 점막하층에 국한된 경우로 병기(病期)로 따지면 1기 이하다. 진행성 위암은 위 근육층까지 침투한 2기 이상 암이다.
◇제균 여부가 암 병기 다음으로 사망·재발·전이에 영향력
김 교수팀이 분석한 위암 환자들의 위암 병기는 66%가 1기였고 34%는 2기 이상이었다. 44%는 수술 2년 안에 제균치료에 성공했고 56%는 제균치료를 받지 않거나 실패했다. 나이 중앙값은 59세(상위 25~75% 49~68세), 추적관찰기간 중앙값은 67개월(상위 25~75% 69~124개월)이었다.
제균 성공군의 전체생존율(위암 이외의 요인 포함)과 위암만 고려한 생존율은 96.5%, 97.6%로 비제균군(79.9%, 92.5%)보다 각각 1.21배, 1.06배 높았다. 제균 성공군의 생존율 향상 효과는 조기 위암 환자보다 진행성 위암 환자에서 훨씬 뚜렷했다. 진행성 위암 환자 그룹에서 제균 성공군의 전체생존율과 위암관련 생존율은 비제균군보다 1.41배(91.2% 대 64.9%), 1.13배(92.2% 대 81.3%) 높았다.
비제균군의 전체사망위험, 위암으로 인한 사망위험은 제균 성공군의 5.9배, 3.4배였다. 위암 병기별 위암 사망위험은 2기가 1기의 9.3배, 3기 이상이 1기의 26.2배였다.
아울러 수술 후 위암 재발, 복막·간담도·폐(흉부)림프절·뇌 전이 등을 포함한 암 재발·전이율은 비제균군이 9.6%(580명 중 56명)로 제균 성공군 2.2%(451명 중 10명)의 4.4배나 됐다. 나이·남녀·암 병기·항암치료 여부 등에 따른 차이를 보정해도 비제균군의 암 재발·전이 위험은 2.7배 높았다. 위암 병기별 위암 재발·전이 위험은 2기가 1기의 7.1배, 3기 이상이 1기의 19.6배였다.
김 교수는 “헬리코박터균 제균 여부가 조기 위암 환자는 물론 진행성 위암 환자의 생존·사망과 암 재발, 특히 전이에 병기 다음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돼 매우 고무적”이라며 “위 부분절제술을 받은 위암 환자 가운데 헬리코박터균 감염자는 암 병기에 관계 없이 제균치료를 받아 사망 및 재발·전이위험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2기 이상 위암환자도 의사가 제균치료하면 건보 적용
헬리코박터균 제균이 이런 효과를 보이는 이유에 대해 김 교수는 “이 균이 기능성 소화불량증, 급성·만성 위염, 위·십이지장궤양, 위암(선암) 등 소화기계 질환 뿐만 아니라 대사증후군·당뇨병 같은 성인병을 유발할 수 있다”며 “우리 몸의 면역·염증반응·대사 시스템 등 전신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위암’(Gastric Cancer)에 발표됐다.
그동안 헬리코박터균 제균치료에 성공한 사람의 위암 발생 위험이 계속 감염 상태인 사람의 3분의1 수준이라거나, 제균에 성공한 조기 위암 환자의 위암 재발률(7.2%)이 비제균군(13.4%)의 절반 수준이라는 연구결과는 있었다.
하지만 암 병기가 2기 이상인 진행성 위암 환자에 대한 제균치료가 위 부분절제술 환자의 생존율·사망률과 암 재발·전이 위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명확한 근거가 없었다. 조기 위암으로 위 부분절제술을 받은 환자에 대한 제균치료가 건강보험 적용 대상으로 명시된 반면 진행성 위암 환자에 대한 제균치료는 빠져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의사가 제균치료의 필요성을 인정하면 건보 적용을 받을 수 있지만 암 재발·전이를 예방하는 효과에 대해 명확한 근거가 없어 제한적으로 이뤄져 왔다.
헬리코박터균은 위 점막을 위산으로부터 보호하는 위점액층에 기생하는 세균이다. 위암의 주범으로 밝혀져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1994년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대개 10세 이전에 사람의 위장 속에 들어와 수십년 동안 위 점막에 염증 반응을 일으킨다.
대변으로 배출된 균이 사람들의 직접 접촉이나 물·음식물 등을 통해 다른 사람의 위에 감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감염률은 1998년 67%에서 2016~2017년 44%로 감소세를 보이지만 30% 이하인 미국·북유럽 등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은 편이다.
<임웅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