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코로나19 환자 15% 넘게
후각·미각기능 이상 증상 호소
완치 판정 후에도 후유증 남아
후각 장애 대부분 코질환이 원인
냄새 못맡으면 미각 이상도 동반
경미한 증상때 치료해야 효과 커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후각 기능 이상(후각 장애)은 알레르기성 비염이나 축농증 같은 코 질환에서 외상ㆍ노화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특히 코나 목이 바이러스에 감염될 때 후각상피세포가 손상되면서 나타날 때가 많다.
그런데 팬데믹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감염됐을 때 후각과 미각의 기능에 문제가 생긴 환자가 국내에서만 15%가 넘었다. 최근 여러 해외 연구에서는 경증 및 중등도 코로나19 환자의 85.6%가 후각 장애를 호소했다.
이 때문에 최근 개정된 우리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지침(제8판)’에 코로나19 감염 증상으로 기존의 발열과 기침, 호흡곤란 외에도 오한과 근육통, 두통, 인후통, 후각ㆍ미각 소실, 폐렴 등을 추가했다.
◇감기ㆍ비염ㆍ축농증 등 원인 다양해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후각 기능 이상은 200개가 넘는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감염이나 알레르기성 비염, 축농증, 두부 외상, 노화 등 원인이 매우 다양하다. 학계에서는 후각 기능 이상을 전도성 후각 장애와 감각신경성 후각 장애로 구분한다.
전도성 후각 장애는 신경은 정상적이지만 후각 전달 과정에 문제가 생겨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감기ㆍ비염ㆍ축농증 등과 같은 코 질환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보통 콧물과 코막힘 같은 특징적 증상이 동시에 나타난다.
전도성 후각 장애는 일반적으로 약물이나 수술을 통해 치료하는데 예후가 상대적으로 좋다. 약물로는 먹는 약(경구약)이나 비강용 스테로이드 제제를 사용한다. 코 점막 염증을 완화하거나 코에 생긴 물혹 크기를 줄여 냄새 물질이 후각상피세포에 잘 도달하도록 도와준다. 후각 기능 이상이 경미할수록 치료 효과가 크기 때문에 증상이 생기는 즉시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감각신경성 후각 장애는 냄새를 인지하는 후각 전달 신경 계통 자체에 문제가 생겨 생긴 것을 말한다. 바이러스로 인한 후각 신경세포 파괴, 흡연ㆍ노화로 인한 손상, 당뇨병, 갑상선질환 등에 의한 내분비대사 이상 손상, 노인성 치매(알츠하이머병)나 파킨슨병으로 인한 손상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후각 신경세포를 파괴해 감각신경성 후각 장애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바이러스는 감기 바이러스이지만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원인으로 떠올랐다. 김신우 경북대 의대 교수는 최근 대한의학회지에 발표한 ‘코로나19 환자의 급성 미각ㆍ후각 상실증 발생률 및 지속 기간’이란 논문에서다. 대구 지역 코로나19 환자 3,191명을 전화 인터뷰한 결과, 초기 감염 단계에서 488명(15.3%)이 후각이나 미각 상실을 겪었다.
미국에서 진행된 연구에서는 코로나19 환자의 후각 기능 이상이 더 심각했다. 코로나19 환자의 61% 정도가 감염 사흘 후 냄새를 잘 맡지 못하거나 전혀 맡지 못했다. 미 신시내티대 이비인후과ㆍ두경부외과 아마드 세다가트 교수팀이 코로나19 환자 103명을 조사한 결과에서다. 특히 젊은 환자와 여성 환자에게서 이런 증상이 흔히 나타났다. 이런 증상은 감염 후 평균 3.4일이 지난 뒤에 시작됐다.
문제는 후각 이상 증세가 완전히 고쳐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후각 이상 증세는 코로나19를 완치하면 4분의 3 정도에서 8일 뒤에 호전됐지만 4분의 1 정도는 완치 후 8일이 지나도 여전히 냄새를 제대로 맡지 못했다.
이처럼 바이러스 등으로 인해 신경 손상이 클수록 감각신경성 후각 장애는 치료하기 어렵다. 장기간 냄새를 맡지 못할 때가 많기에 각별히 관리해야 한다. 장용주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바이러스가 후각 상피세포를 파괴해 후각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증상이 지속된다면 뾰족한 치료법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약물로는 감각신경성 후각 장애를 치료하는 데 한계가 있어 최근 후각 자극 물질을 이용한 후각 재활 훈련을 시행하고 있다. 후각 재활 훈련은 꽃이나 허브, 음식 냄새 등 특정한 향기를 반복적으로 맡게 해 후각신경이 재생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치료법이다.
김규보 강동성심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후각 재활 훈련은 비용이 적게 들고 부작용도 거의 없어 점점 많이 시행되고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다만 현재 국내에는 시험하는 향기 물질을 상용화한 검사 키트가 없어 환자에게 맡게 하는 향기 물질이 병원마다 다르다”고 덧붙였다.
◇냄새 못 맡으면 덩달아 맛도 못 느껴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미각 기능 이상(미각 장애) 증상은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미각이 정상보다 줄어든 ‘미각 감퇴’, 단맛을 쓴맛으로 느끼는 등 맛이 다르게 느껴지는 ‘이상 미각’, 정상보다 예민해지는 ‘미각 과민’ 등이다.
미각 기능 이상은 후각이 상실되면서 동반될 때가 대부분이다. 정은재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항류마티즘 약제ㆍ항암제ㆍ고혈압약(캡토프릴) 등이 미각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약”이라며 “당뇨병이나 갑상선기능저하증 등 내분비 장애, 악성 종양, 외상, 방사선 치료, 영양실조, 쇼그렌증후군 등도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병력(病歷) 청취와 비강ㆍ구강 비염 여부, 혀와 침 분비 상태를 확인해 원인을 찾는다. 단ㆍ짠ㆍ신ㆍ쓴맛 등 4가지 맛을 느끼는지 평가한 뒤 후각검사도 같이 시행해 이상이 발견되면 정밀검사를 통해 미각 기능 이상을 판단한다. 치료는 장애를 일으키는 약을 먹고 있으면 교체하고, 영양 실조가 원인이라면 글루콘산아연ㆍ비타민A를 보충하면 완전한 회복이 가능하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