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염증·신경계 질환으로 통증
방치땐 통증조절 신경계 망가져
고혈압^당뇨^우울증까지 유발
환자 20%에서 자살 충동까지
초기 치료 땐 비교적 쉽게 해결
무턱대고 운동보단 병원 진찰을
‘참는 게 미덕’이라는 속언은 잘못된 말이다. 의학적으로는 ‘참으면 병 된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통증은 몸 특정 부위에 이상이 생겼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통증을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통증 원인이 사라져도 3~6개월 이상 계속 아픈 ‘만성통증’에 시달릴 수 있다.
만성통증은 예컨대 수술이나 교통사고 후 상처는 아물었지만 통증이 사라지지 않고 수개월 이상 지속되는 때 등을 말한다. 이른 만성통증을 방치하다가 80% 정도가 불안ㆍ우울ㆍ불면 등 다양한 문제에 시달리게 된다. 전영훈 대한통증학회 회장(경북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은 “특별한 질병이 없는데도 3개월 이상 지속되는 만성통증을 방치했다가 고질적인 병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성인 10명 가운데 1명 꼴 발병
통증은 대개 염증이나 신경계 질환 등 다양한 질환 때문에 발생한다. 급성통증이 오래 지속·반복되면 신경세포에 통증을 전달하는 전기신호가 많아져 통증이 심해지고 오래 지속된다. 이때 신경세포 안에 자극을 받아들이는 수용체도 늘어나기에 통증에 예민해지고 자극을 하지 않아도 통증을 느끼게 된다.
통증이 3~6개월 이상 지속되는 통증 자체가 질병으로 변한 만성통증이다. 통증을 조절하는 몸의 신호체계인 신경계가 망가지면서 원인 질환을 치료해도 계속 아프기 때문이다. 대한통증학회에 따르면 만성통증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25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성인은 성인 10명 가운데 1명꼴로 더 많이 시달린다.
만성통증은 스트레스를 늘려 각종 질병을 일으킨다. 몸을 흥분시키는 교감신경계가 활성화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증가해 혈압과 혈당이 올라간다. 이 때문에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또 아픈 부위 대신 다른 신체만 사용하면서 근골격계가 약해질 수 있다. 집중ㆍ기억력 감소, 수면장애, 우울증, 면역력 저하 등도 생길 수 있다.
만성통증 환자에게서 우울증이나 우울감 유병률이 30~70% 정도이고, 수면장애나 의욕 상실을 호소하는 사람도 60~80%나 된다. 임윤희 대한통증학회 홍보이사(상계백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세로토닌이나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뇌에서 감정과 통증 전달에 관여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특히 만성통증 환자의 20% 정도가 자살 충동을 느꼈고, 5~14% 환자가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다. 자살충동은 통증이 심하고 병을 앓는 기간이 길수록 더 커진다.
이는 대한통증학회가 통증 환자 1,060명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만성통증으로 31%가 직장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고, 수면장애(60%), 우울(44%), 집중ㆍ기억력 저하(40%), 불안(37%), 자살 충동(35%)을 겪고 있다.
◇두통·요통·관절통 등이 주원인
만성통증은 두통, 요통, 관절통, 암성 통증, 신경통, 대상포진 후 신경통 등에 의해 흔히 발생한다. 두통 가운데 편두통·긴장성 두통·경추성 두통 등이 주로 만성통증으로 이어진다.
다리에 나타나는 만성통증은 척추관협착증·퇴행성 무릎관절염 등에 의해 많이 생긴다. 고령인 가운데 50~100m 정도 걷다가 허리와 무릎이 아파 쉬었다 가야 하는 사람이 많다. 흔히 ‘쪼그려 앉아서 쉬면 나아진다’고 표현하는 이 질환이 퇴행성 질환인 척추관협착증이다. 이를 방치하면 퇴행이 계속돼 결국 수술해야 한다. 송현결 서울시보라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만성통증을 초기에 치료하면 신경차단술이나 신경관확장술 등으로 비교적 쉽게 조절할 수 있다”고 했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은 대상포진의 진단·치료가 늦어지거나 만성질환이 있으면 만성통증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높기에 초기에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암성 통증과 뇌경색 후 통증도 만성통증으로 많이 이어질 뿐만 아니라 불안·우울·불면 등이 다른 질환보다 더 많이 동반되므로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만성통증 치료는 신경차단(블록)·신경 자극·건·인대 강화·통증 유발점 주사 등 비수술요법과 항우울제·진통제(트라마돌 등)·항경련제(프리가발린 등) 약물요법 등 다양하다. 다만 만성통증은 어느 한 부분을 치료한다고 해서 통증이 모두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으로 치료해야 한다.
통증 정도를 0~100점으로 나눌 때 통증이 30~40점(중등도) 이상이라면 전문의를 찾아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좋다. 전영훈 대한통증학회 회장은 “통증이 심해질수록 우울·불안·불면 등 신경정신적 증세가 더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임윤희 대한통증학회 홍보이사는 “만성통증 해소를 위해 운동, 물리치료, 요가, 명상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면서도 “무턱대고 운동하기보다 전문의를 찾아 우선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하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