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NFL 챔피언 결정전 ‘수퍼보울’에서 아시아인으로는 첫 수화 공연을 선보인 한인 2세 크리스틴 선 김(40)씨가 뉴욕타임스(NYT) 칼럼을 통해 공연을 수락하게 된 배경과 공연 이후 소회를 진솔하게 풀어냈다.
김씨는 지난 3일자로 “왜 수퍼보울에서 청각장애인 시청자를 위해 공연했는가”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미국에 대한 애국심과 장애인으로서의 저항을 표출하기 위해 공연에 나섰지만, 기쁨과 동시에 좌절을 맛보게 됐다고 밝혔다.
자신을 “이민자의 자녀이자, 피난민의 손자이며, 청각장애를 가진 유색인종 여성 예술가이자 어머니”라고 소개한 김씨는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시민이 같은 권리를 누리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자부심으로 공연 제안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국가와 전통 애국가요 ‘아름다운 미국’(America the Beautiful) 두 곡을 수화로 공연한 그는 이후 방송을 보고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TV나 모바일로 보던 시청자가 그의 수화를 볼 수 있었던 건 단 몇 초뿐이고, 공연 대부분이 선수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화면 등으로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김씨는 “청각장애인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돼 감격스러웠던 만큼 너무나 화가 났다”며 장애인으로서 투쟁의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씨는 1990년 제정된 미국 장애인법(ADA) 덕분에 받을 수 있었던 폭넓은 지원에 대해 감사를 표하면서도 여전히 ‘미국의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차별을 떠올리며 무대에 서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법만으로는 좁혀지지 않는 의사소통 문제로 경찰에 폭행당하거나 총에 맞아 숨지는 비극적인 상황에 놓여야 했던 동료 청각장애인들의 사례를 나열하기도 했다.
김씨는 또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국가 보건 서비스의 제약과 고용 단절 등이 ‘유색인종’에게는 특히나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토로했다.
다만 그는 수퍼보울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시선이 모인 곳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권리 역시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자신의 수화 공연이 유색인종 장애인을 둘러싼 여러 겹의 고정관념을 깨고 더 많은 사람이 행동하도록 만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칼럼 말미에 청각장애를 가진 자신과 여동생을 위해 부모님이 수화를 배웠을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가 남들에게 보이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게 됐다는 일화를 짧게 소개했다.
그러면서 미국 국가를 수화로 부르기로 결정한 것도 수화라는 언어를 존중하는 자신만의 방법이었다며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부모처럼 ‘모든 언어’와 ‘모든 정체성’을 존중하기를 바란다고 끝맺음했다.
미국 청각장애인협회(NAD)는 현재 김씨의 공연 전체가 담긴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오렌지카운티 출신인 김씨는 선천적으로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로체스터공대를 졸업하고, 스쿨 오브 비주얼아트(SVA)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출판업계에서 일하다 2008년 소리를 주제로 한 예술 작품을 보고 사운드 아티스트가 됐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그는 음악과 언어, 수화를 모티브로 한 회화,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펼치며 ‘소리를 활용하는 최고 예술가’라는 찬사 속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