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등 현장 찾아 미군 인터뷰 토대로 보도
“지대공 방어 구축 안돼 이런 공격에 취약
사망 없었지만 현지선 인명살상 의도로 봐”
지난 8일(현지시간) 이란이 첫 미사일을 발사하기 두시간여 전 이라크 아인 알아사드 공군기지에 주둔한 미군들은 콘크리트 벙커로 몸을 피했다.
앨라배마주 출신인 네이트 브라운(34) 공군 대위는 대피 전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러고는 전화는 물론 무전도 통하지 않는 벙커에 들어섰다.
새벽 1시30분께 기지에 이란이 발사한 미사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확성기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고 곳곳에 큼직한 구덩이가 파였다. 대피한 미군 장병들에게도 미사일이 떨어지는 충격파가 느껴졌으며 벙커 출입구는 주저앉아 버렸다.
월스트릿저널(WSJ)과 워싱턴포스트(WP)가 아인 알아사드 공군기지의 미군을 직접 취재해 13일 전한 내용이다. WSJ와 WP 말고도 CNN·NBC·ABC방송 등 미 언론 여럿이 이날 공군기지 현장취재를 토대로 한 기사를 일제히 내보냈다.
CNN방송은 기지를 방문해 피해 상황을 직접 보니 이런 종류의 미사일 공격에 기지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알 수 있다고 전했다. 공격 몇 시간 전에 대피가 이뤄지기는 했으나 해당 기지에 탄도미사일 공격을 막아낼 지대공 방어 능력이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사일 공격으로 생긴 구덩이 하나는 무인기 조종사 및 운용인력의 거처에 있었다. 깊이가 2m, 직경이 3m 정도 돼 보였고 가장자리에는 슬리퍼와 놀이용 카드, 군용 재킷이 보였다고 CNN은 전했다.
이 구역의 별명은 ‘혼돈’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케이오스’(chaos)였다고 한다. 이란의 미사일이 날아와 별명과 같은 실제 상황을 만든 셈이다.
WP는 해당 기지의 미군 지휘관들이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 대해 인명 살상을 노린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이 미국에 대한 자극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사상자 0’을 염두에 둔 미사일 공격을 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지만 실제 기지에 와 10여명의 얘기를 들어보니 사망자가 없었던 것이 계획이라기보다는 운 덕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인 알아사드 공군기지의 팀 갤런드 중령은 WP에 “가능한 한 많은 사상자를 내려고 계획·조직된 공격”이라고 말했다. 스테이시 콜먼 중령도 사망자가 없었던 것에 대해 “기적적인 일”이라고 했다.
AP·로이터통신이 보내온 사진을 보면 이란의 미사일 공격으로 인한 처참한 현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전 대피가 이뤄졌고 사망자가 없었다고는 해도 미사일 공격으로 인한 피해가 작지 않음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당국의 허가 없이는 공군기지 취재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미국도 이러한 장면을 언론을 통해 공개하면서 이란의 공격을 비난하는 한편 사망자 없이 공격에 대처한 성과를 부각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란은 미국이 혁명수비대 정예부대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공습 사살한 데 대한 보복으로 지난 8일 이라크 내 아인 알아사드 공군기지와 에르빌 지역 기지를 미사일로 공격했다.
두 곳 다 미군이 주둔한 곳인데, 이란이 미사일 발사 계획을 미국에 미리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등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한 ‘계획된 공격’을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도 군사 대응을 하지 않고 추가 제재로 대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