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구글·아마존 등 이익에 2~3% 택스 부과
미 자국기업 보호 IMF·세계은행 통한 로비 나서
21세기 들어 부자 나라들일수록 더욱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제 경제 현장에서 경쟁자를 누르고 승리를 거머잡기 위해 기업의 법인세부터 금리 인하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개입은 관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페이스북, 구굴 같은 IT업체에 신종 세금을 부과하는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자기 나라 국민의 일상에 깊숙히 들어와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으면서도 세금은 거의 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지난 11일 세계 최초로 ‘디지털 세금’을 부과하는 나라가 됐다. 앞으로 프랑스에서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익을 거두는 기업은 3%의 세금을 내야 한다. 주요 대상인 기업들은 프랑스에서 연간 매출을 크게 올리는 20여 개의 IT회사들이다.
이 중에는 미국 기업인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이 포함돼 있다. 물론 프랑스 기업보다 외국계 기업에 더 세금을 많이 부과할 것은 뻔하다. 같은 날 영국도 2%의 유사한 세금을 부과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유럽연합 역시 디지털 세금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디지털 경제는 이제 전통적인 동맹 국가 간에도 긴장과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서로 관세를 올리고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위협이 공공연하게 오갈 지경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정치 경제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모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호 불신과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10일 밤 프랑스의 디지털 세금 부과 방침을 바로 앞두고 이를 비난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리고 프랑스가 미국의 IT 대기업에 부과하는 세금이 적절한 지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기업에 대한 징벌적인 요소는 없는지, 우회적으로 관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면밀히 살펴 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영국에 대해서도 디지털 세금 부과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프랑스의 디지털 세금 부과 방침에 대해 미국의 IT업계는 물론 공화당과 민주당도 초당적으로 비판 대열에 나서고 있다. 국제적인 디지털 세금 협약을 긴밀하게 논의하면서 프랑스의 일방적인 결정을 비난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앞세워 디지털 세금 부과에 대항 중이다.
워싱턴에서는 유럽 국가들과의 협상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로비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와 무역 분쟁을 벌이고 있는 처지에 유럽의 이런 움직임에 홀로 나서기에는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행정부는 국제적인 동조 세력을 얻으려 노력 중이다.
이를 위해 연방상원을 압박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국제세금조약을 새롭게 개정하는 패키지 법안을 상원이 어서 통과시키라는 것이다. 이를 가지고 동맹국들에게 ‘디지털 휴전’을 이끌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상황인지를 보여주겠다는 시도다.
각국은 지난 20년간 다투어 기업을 위한 법인세를 인하해 왔다. OECD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이후 법인세는 7%포인트나 하락해 지금은 평균 21% 수준을 기록 중이다. 미국과 프랑스도 모두 지난해 법인세를 인하했다. 미국의 법인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세금 인하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국제 평균 수준인 21%로 내려 앉았다.
미국 IT대기업의 매출은 전 세계에 걸쳐 크게 치솟고 있다. 하지만 세금 납부 액수는 별로 늘지 않았다. 선진국 정부는 디지털 비즈니스 기업들이 공정한 몫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제기한다. 유럽연합(EU)의 조사에 따르면 디지털 기업들의 매출은 네 배 이상 급속히 성장하는 추세다. 유럽의 소비자들을 향한 대대적인 광고도 여기에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업들은 유럽에서 표면적으로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세금은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회사의 운영과 자산을 바탕으로 매겨지는데, IT기업들은 바로 이런 세제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이익을 거두고 있다. 디지털 비즈니스는 겉으로는 매출 현황이 쉽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EU는 이런 상황 덕분에 IT기업들이 다른 업종의 다국적 기업들이 내는 세금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 만을 납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므누신 재무장관의 업무 중에는 바로 이런 이슈에 대응하는 일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재무 및 금융 지도자들과 국제 포럼에서 토론을 벌이는데 상당한 시간을 쏟아붓고 있다. 지난 4월에도 국제통화기금(IMT)과 세계은행 연석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므누신 장관은 국제적인 해결책을 찾는 게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프랑스와 영국을 압박해 세금 부과 방침을 포기하라고 다그쳤다. 일본에서 6월에 열린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도 미국의 우려를 강조해 상당 부분 양보를 얻어내기도 했다.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등의 IT대기업에 대한 디지털 세금은 매출이 아니라 순익을 기준으로 책정해야 한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양측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OECD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글로벌 차원의 디지털 세금 플랜을 갖추자는 내용이다. 130개에 달하는 나라가 여기에 동의했다.
이번 주 프랑스 샹틀리에서 열리는 G7 재무장관 회의에서 다시 한번 디지털 세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를 앞두고 브루노 르 매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프랑스의 디지털 세금 정책이 국제적인 협약을 이끌어 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방상원 공화당 지도부와 재무부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 맺은 국제세금조약을 개정하려고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미치 맥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번 주에 법안을 투표에 부치도록 이미 지난주에 준비 작업을 마쳤다. 법안이 통과되면 다국적 기업을 위한 초당적인 승리의 파티가 벌어질 수도 있다. 상원 의석의 3분의2가 찬성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안이 확정되면 일본, 스페인, 룩셈부르크, 스위스와 세제협약이 개정된다. 그러면 다국적 기업은 해외 사업을 위해 송금하는 과정이 간편해지고 벌금 면제도 쉬워진다. 또 미국내 사업에 해외자본 투자를 활성화시킬 수도 있다. 또 기업은 물론 개인의 세금 정보도 한층 세밀하게 국가간에 공유할 수 있게 된다.
반도체산업협회, 비즈니스라운트테이블 같은 막강한 단체가 이 법안을 상원이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기업의 해외 사업을 보다 원활하게 도울 수 있으며 해외 자본의 미국 투자를 촉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법안을 통해 가장 큰 혜택을 받는 기업 중의 하나가 노스아메리칸스테인레스다. 스페인 기업이 소유권을 갖고 있는 이 회사는 켄터키 주에 자리잡고 있으며 1,3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지역구를 켄터키에 두고 있는 맥코널 원내대표가 앞장 서서 법안 통과를 위해 동분서주 할 수 밖에 없을 이유다.
구글은 프랑스의 새로운 디지털 세금의 주요 타깃 중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