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서 안개 낀듯 보이는 ‘간유리 음영 폐암’ 많아
조리중 연기·미세먼지·유전적 요인 등 원인 다양
1㎝안팎 초기 암 순한 편… 부분절제로 완치 가능
지난 2016년 국내에서는 폐암으로 1만7,963명이 사망했다. 폐암 사망자는 간암(1만1,001명), 대장암(8,432명), 위암(8,264명) 등과 비교할 때 훨씬 많다.
폐암의 70% 가량은 흡연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최근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폐암 1~3A기(3기 초반) 환자 중에는 ‘담배를 피지 않는’ 여성이 절반 가량이나 됐다. 대부분은 건강검진 등 과정서 찍은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에 안개가 낀 듯 희뿌옇게 보이는 ‘간유리 음영 폐암’ 1~2기 환자들이다. 처음부터 종양이 진하게 찍히는 흡연자들의 폐암(편평상피세포암)과 다른 암종으로 상대적으로 순하고 예후가 좋은 편이다.
하지만 ‘폐암 수술 표준 가이드라인’은 주변 림프절로 전이되지 않은 1기 간유리 음영 폐암도 일반 폐암과 마찬가지로 종양보다 2㎝ 이상 넓게 잘라낼 것을 권고한다. 또 폐 주변과 종격동(기관·기관지 등이 있는 좌우 흉막강 사이의 공간) 림프절을 모두 청소하듯이 떼어내도록 권고한다. 수술 전 영상 검사로 1기 진단을 받았더라도 수술 후 조직검사에서 2기나 3기(림프절 전이)로 확진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재발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폐는 오른쪽에 3엽(상엽·중엽·하엽), 왼쪽에 2엽(상엽·하엽) 등 모두 5엽으로 이뤄져 있다. 일반적인 폐암은 오른쪽 상엽에서 암이 발견된 경우 1기라도 상엽을 통째로 들어내는 폐엽절제술을 하는 게 원칙이다. 다만 초기 간유리 음영 폐암은 순한 편이어서 실제로는 폐엽절제보다 잘라내는 범위가 작은 부분절제(구역·쐐기절제)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서울성모병원 폐암센터 문영규 흉부외과 교수팀은 간유리 음영 폐암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표준 가이드라인에서 권고하는 수술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환자의 폐기능과 삶의 질을 필요 이상으로 떨어뜨린다는 결론을 냈다. 폐를 많이 떼어낼수록 수술 후 폐기능이 떨어져 삶의 질이 낮아진다. 림프절을 많이 떼어내면 주위 조직에 손상을 입혀 여러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고 흉수가 오래 나오기도 해 수술 후 입원 기간이 길어진다.
문 교수팀의 연구결과는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국제학술지(World Journal of Surgery)에 세 차례 발표됐다.
문 교수팀이 서울성모병원에서 지난 2005~2016년 수술 전 1기 폐암으로 진단 받고 표준 폐암 수술(폐엽절제술과 종격동 림프절 청소술) 을 받은 486명의 환자를 분석했더니 8.6%(42명)만이 수술 후 조직검사에서 2~3기 환자로 진단됐다. 종양의 크기가 작을 수록, 주로 간유리 음영으로 구성된 폐암일수록 림프절 전이 위험은 크게 떨어졌다. 종양의 크기가 1.2㎝ 이하로 작거나 주로 간유리 음영으로 구성된 폐암(종양 내 고형 결절이 2분의1 미만)인 경우에는 림프절 전이가 없었다. 림프절을 잘라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주로 간유리 음영으로 구성된 폐암은 어느 범위까지 잘라내면 될까. 문 교수팀이 크기 3㎝ 이하의 간유리 음영 폐암 환자 중 폐를 일부분만 절제한 91명을 분석했더니 주로 간유리 음영으로 돼있는 종양(간유리 음영 내 고형 결절의 비율이 2분의1 미만)은 종양보다 0.5㎝ 이상 넓게 잘라내든, 그보다 좁게 잘라내든 상관없이 5년간 암이 재발하지 않았다. 종양보다 2㎝ 넓게 잘라내라는 표준 가이드라인을 지킬 필요가 없고 0.5㎝ 안팎만 넓게 잘라내면 된다는 얘기다.
문 교수는 “직경이 1.5㎝ 이상인 간유리 음영은 95% 이상이 주변 조직을 침투(침윤)하려는 활동성 암, 1㎝ 이상은 80~90%가 암인 반면 0.6㎝ 미만은 암까지 안 간 단계, 0.6㎝ 이상~1㎝ 미만은 암까지는 갔지만 아직 주변 조직을 침투하려는 활동성은 없는 암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초기 간유리 음영 폐암은 정상적인 미세 구조물 사이에 암세포들이 안개처럼 끼어 있는 상태인데 이게 뭉쳐져서 침습성 폐암으로 되는 데는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며 ”크기가 클수록 침습성 폐암으로 빨리 진행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간유리 음영 폐암에 걸리는 원인은 간접 흡연이나 요리를 하면서 들이마시게 되는 발암물질·블랙카본·미세먼지, 대기오염 때문으로 관측된다. 아울러 이런 물질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아시아계 여성의 유전적 특성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문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 간유리 음영으로 구성된 폐암의 수술 범위를 더욱 정확하게 계획해 실행할 수 있게 됐다”며 “림프절 전이가 없는 1기 간유리 음영 폐암은 폐를 크게 자르지 않아도 되고 주변 림프절을 제거할 필요도 없어 환자의 회복이 빠르고 수술 후유증도 매우 적다”고 말했다. <임웅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