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혈관에 생기는 혈전 억제
환자 절반 항응고제 복용 안해
혈액검사 자주 할 필요 없고
다른 약제와 함께 먹어도 무관한
아픽사반 등 치료제 사용땐 효과
심방이 무질서하게 뛰면서 불규칙한 맥박을 형성하는 심방세동은 그 자체로도 무서운 질환이지만 허혈성 뇌졸중(뇌경색)의 주요 원인이어서 더욱 위험하다. 심방세동 환자와 뇌경색 고위험군은 심장·혈관에 혈전(피떡)이 생기는 것을 억제하는 항응고제를 꾸준히 복용하면서 예방치료를 해야 한다.
전체 국민의 1% 내외가 심방세동 질환을 갖고 있으나 예방치료를 하는 비율은 절반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나 주의가 요구된다.
최의근 서울대병원·이소령 순천향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팀이 지난 2008년부터 2015년까지 8년간의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심방세동 환자는 인구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15만명에서 28만명으로 1.9배 증가했다. 이는 전체 인구의 0.7%에 해당한다. 고령, 고혈압, 당뇨병, 동맥경화, 뇌경색 과거력, 심부전 등 심방세동 위험인자를 2개 이상 가진 ‘뇌경색 고위험군’도 12만명에서 23만명으로 1.9배 늘어났다.
하지만 항응고제를 꾸준히 먹고 있는 뇌경색 고위험군은 35%에서 51%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절반 가까운 환자들이 여전히 뇌경색 예방치료를 받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국·유럽 심장학회는 뇌경색 고위험군에 반드시 먹는 항응고제를 처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최 교수는 “환자는 물론 의료인들 사이에서도 심방세동이 어떤 질환인지, 심방세동이 뇌경색 위험을 얼마나 높이는지에 대한 인지도가 여전히 낮은 실정”이라며 “지금도 혈소판억제제인 아스피린이 뇌경색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잘못 아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혈소판억제제가 아니라 항응고제를 먹어야 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어떤 항응고제를 먹는 게 좋을까. 최 교수는 “과거에는 비타민K가 응고인자를 만드는 과정을 억제하는 와파린을 많이 썼지만 요즘에는 비타민K와 무관한 다른 경로로 작용하는 새 항응고제들이 등장했고 비(非)판막성 심방세동 환자의 뇌졸중 예방치료 등에 쓸 때도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최근 사용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와파린은 효과 확인을 위해 빈번하게 혈액검사를 해야 하고 음식, 다른 약제와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문제가 있었다. 반면 다비가트란·아픽사반·리바록사반 성분의 새 항응고제들은 이로부터 자유롭다.
뇌경색은 뇌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는 뇌혈관이 막혀 뇌조직이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부정맥·심부전·심근경색 등으로 인해 심장에 생긴 혈전,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등으로 혈관 안쪽 벽에 낀 지방혹(죽종)이 터지면서 뇌혈관을 막아 발생한다. 갑자기 말이 어눌해지고 한쪽 팔·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시야가 캄캄해지는 등 전조증상이 나타난다. 이런 상태가 일정 시간 이상 지속되면 뇌조직 일부가 죽는다. 뇌혈관이 막히면 1분당 190만개의 뇌세포가 죽고 한번 손상된 뇌세포는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뇌경색은 단일 질환 중 사망원인 1위인 뇌졸중의 약 80%를 차지하지만 전조증상인지 모르거나 간과해 ‘골든타임(증상이 나타난 지 4시간 30분 이내)’을 놓쳐 혈전용해제 투여 시간이 치료의 성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심방세동 환자는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어 두근거림·숨찬 증상이 나타나고 좌심방 아래쪽에 혈액이 정체되면서 엉겨붙어 혈전이 잘 생긴다. 심장 혈전은 혈관 지방혹이 터져 생긴 혈전보다 커 이게 떨어져 나갈 경우 뇌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는 큰 혈관을 막아버릴 위험이 높다. 이 경우 뇌경색의 범위가 넓고 후유증도 심하다.
한편 혈전용해제로 막힌 뇌혈관을 뚫은 뒤 24시간 안에 항혈전제를 투여하는 게 뇌졸중 재발위험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김범준 분당서울대병원 뇌신경센터 교수팀이 2007~2015년 병원에서 혈관재개통 치료를 받은 712명의 환자를 분석한 결과 항혈전제를 조기에 투여한 환자군의 뇌출혈 발생 위험이 24시간 이후 투여군보다 44% 낮았다.
지금까지는 1990년대에 명확한 임상근거 없이 만들어진 미국뇌졸중학회의 진료지침을 준수해왔으나 실정에 맞지 않은 것으로 개정할 필요성이 제기된 상태이다. <임웅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