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트·필스너 우르켈이 최고점
하이트, 산뜻한 맛이 느끼함 잡아
필스너 우르켈은 간장맛에 풍미
시장 인기도 제친 뜻밖의 결과
할인 행사·브랜드 이미지에 가려
맥주의 참 맛 놓쳤던건 아닌지…
▶이인호: 2008년 맥주에 푹 빠지기 시작해 자가양조, 맥주 정보 전문 사이트 ‘비어포럼’ 오픈을 시작으로 맥주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김상미: 와인 칼럼니스트. 맥주 중에서는 파울라너 바이스비어, 기네스, 듀체스 드 부르고뉴를 즐겨 찾는다.
▶안상현: 전문분야인 한국 술 못지않게 와인에도 취향이 발달했다. 즐겨 마시는 맥주는 바이엔슈테판, 크롬바허, 듀체스 드 부르고뉴.
▶김류미: 대학 시절 ‘레드락’ 생맥주를 파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맥주에 개안했다. 자주 마시는 맥주는 카스, 기린, 스텔라 아르투아인데 카스는 소맥으로 즐긴다.
▶남민영: 치킨과 맥주가 강력한 취미 생활로 음식에 따라 맥주를 바꿔 가며 마신다. 주로 구입하는 맥주는 삿포로, 1664블랑, 하얼빈.
“한국 맥주는 맛이 없다”라는 말 한마디는 어떤 촉발점이 됐다. 한 외신 기자가 ‘한국 맥주’를 북한의 대동강 맥주만도 못하다고 평가한 이후, 그 반발작용으로 한국에서는 크래프트 맥주(소규모 양조장이 자체 제조법으로 만드는 맥주. 수제 맥주) 붐이 일었다. 문제적 발언의 주인공인 대니얼 튜터씨는 현재 크래프트 맥주 기업인 더부스의 공동설립자로 일하고 있다. 또 다른 맥주 전문가들은 “라거는 원래 맛이 없어야(무미) 하는 맥주인데 한국 맥주는 그에 부합하는 라거”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내놓는다. 맥주 업체 광고모델로 내한한 영국의 유명 요리사 고든 램지가 “‘카스’는 한국 음식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맥주”라는 취지의 발언까지 던지자 맥주 맛은 더욱 미궁에 빠진다. 한국 맥주에 대한 평가들 사이의 간극은 마리아나 해구만큼이나 깊다.
소비자는 어리둥절하다. 그래서 한국 맥주는 맛이 있다는 건가, 없다는 건가.
인기 맥주 베스트10과 한국음식의 궁합을 찾아보자
진실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한다. 한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인기 맥주를 뽑아 직접 시음해 봤다. 점포 수만 1만 2,000여개로 편의점 매출 1위를 유지하고 있는 GS25에서 지난해 10~12월 3개월 간 판매된 500㎖ 캔맥주 순위를 살펴봤다.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를 각각 10위까지 뽑은 후 페일 라거(맥아의 단 맛과 홉의 쓴 맛을 줄여 맑고 옅은 맛을 내는 라거 맥주, 전 세계적인 대기업에서 대량 생산하고 있는 대표적인 맥주), 부가물 라거(쌀, 옥수수 등 맥아 외의 재료를 첨가한 맥주), 필스너(페일 라거의 한 종류로 쓴 맛이 부각되고 황금색을 띤 맥주) 등 라거로 분류되는 맥주를 추렸다.
국산 맥주 중 카스와 카스 라이트는 동일 브랜드로 보고, 이중 더 대표적인 카스를 취했다. 수입 맥주 시장에서는 아사히, 기린 이치방, 삿포로 등 일본 맥주가 강세를 보였지만 보편적인 평가를 위해 샘플은 국적별로 하나씩 추출했다.
이와 같은 기준으로 추출된 맥주는 수입과 국산 맥주 각 5종이다. 아사히, 칭다오, 필스너 우르켈, 스텔라 아르투아, 하이네켄 그리고 카스, 하이트, 클라우드. 프리미어 오비 필스너, 맥스다. 단, 이 리스트에서도 필스너 계열 라거는 여러 시음에서 태생적으로 유리하다. 시원하고 맑은 맛과 청량감에 치중하는 페일 라거나 부가물 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맛과 향이 진해 좋은 점수를 받기 쉽다. 시음 대상 맥주 중 프리미어 오비 필스너와 필스너 우르켈이 필스너 계열에 해당한다.
편의점 집계 특성 상 인기 순위에는 ‘4캔 1만원’ 행사 등 지속적으로 할인 행사를 해 온 맥주가 상위에 올라 있다. 따라서 시음 대상 맥주는 시장에서 인기 있는 것이지, 완성도 높은 맥주를 기준으로 삼은 것은 아니다. 맥주의 상미 기한에 대한 변수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유통기한과 관계 없이, 제조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맥주가 더 좋은 풍미를 낸다는 것이 맥주 업계의 다수 의견이다.
이렇게 선정된 라거 맥주 중 한국 음식에 가장 잘 맞는 맥주가 무엇인지 찾을 차례다. 한국에서 이의없이 맥주와 찰떡궁합으로 꼽히는 건 치킨이다. 수 많은 치킨 브랜드 중 전반적으로 강한 특징을 지녀 지점에 따른 조리 차이 등으로 인한 맛 편차가 적은 교촌 치킨을 택했다. 교촌 간장 오리지널, 레드핫, 프라이드를 시식 대상으로 정했다.
한국 음식에 맞는 맛있는 맥주를 찾기 위해, 다양한 층위의 패널로부터 균형 잡힌 의견을 구했다. 서울 공덕동 미스터리 브루잉 컴퍼니 대표로 있는 이인호씨를 맥주 전문가로 초빙했다. 타 주류 전문가로는 와인 칼럼니스트 김상미씨와 ‘한국술집 안씨막걸리’를 운영 중인 안상현씨가 선정됐다. 맛집 지도 앱 ‘뽈레’ 기획자인 김류미씨, IT 기업 회사원이자 치맥 애호가인 남민영씨는 일반인 패널로 참가했다.
10종의 맥주 중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를 섞어 2차에 걸쳐 블라인드로 시음했다. 먼저 아사히, 맥스, 클라우드, 하이네켄, 프리미어 오비 필스너를 1~5번으로 한 차례 시음했다. 잠시 휴식을 가진 후 6~10번까지 칭다오, 스텔라 아르투아, 필스너 우르켈, 하이트, 카스를 순서대로 시음했다. 세 가지 맛 치킨은 패널들이 자유롭게 곁들여 먹는 방식으로 두 시간여에 걸쳐 진행했다. 각 치킨과의 조화 점수를 각 5점 만점, 총점 15점으로 두고 패널들이 매긴 점수의 평균으로 다시 순위를 매겼다.
이제까지 뭘 마신 걸까?
수입 맥주라면 아사히, 국산 맥주라면 카스가 언제나 편의점 맥주 냉장고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많이 팔린다는 뜻이다. 그러나 패널들의 시음 결과는 이러한 인기와는 무관했다. 패널들이 치킨과 먹기에 가장 좋다고 답한 맥주는 국산 맥주는 하이트, 수입 맥주로는 필스너 우르켈이 꼽혔다. 그러나 이들의 판매 순위는 각각 3위와 7위다. 가장 많이 팔리는 아사히는 치킨과의 조화 총점에서는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카스 역시 인기에 비해서는 치킨과 조화 점수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우리는 이제껏 뭘 마시고 있었던 걸까? 시음에 참가한 패널들 역시 인식과 다른 결과에 놀란 듯, “할인 행사나 브랜드 이미지로 맥주를 선택해 왔던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이해림 객원기자>
<강태훈 포토그래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