훠궈의 새빨간‘마라’육수엔
덥고 습한 날씨 견디는 성분 가득
‘맵다’보다‘얼얼하다’가 어울려
풍성한 재료가 조화로운 마라탕
냉장고 속 뭐든지 볶는 마라샹궈
마라롱샤·라즈지 등 즐겨 찾아
중국 음식이라고 하면 짜장면과 짬뽕, 그리고 탕수육이 전통적 대명사다. 요즘 중국 음식이라고 하면 좀더 다양한 메뉴가 떠오른다.
전국 팔도의 맥주 안주로 군림 중인 양꼬치가 중국 음식의 또 다른 대명사가 된 지 몇 해다. 이 계열 음식은 동북 지역 맛으로부터 변형된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중국 음식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다른 계열의 음식이 있다. 그 단어만으로도 무시무시하고 동시에 군침이 가득 고이는 마라, 즉 쓰촨(사천) 지역의 얼얼하고 매운 맛이다. 새빨간 마라탕 육수가 기본이 된 ‘훠궈’를 필두로 ‘마라탕’ ‘마라샹궈’ ‘마라롱샤’ ‘마라두부’ ‘라즈지’ 등 생소한 이름이 중국 음식의 새로운 연관 대명사로 떠오른다. 대림, 구로, 건대 입구 등 서울 안의 차이나타운은 물론 차이나타운과 관계 없는 곳곳에 사천음식을 다루는 중국 식당이 불쑥불쑥 생겨나는 추세다.
땅덩이가 넓은 중국 음식은 풍토와 산물에 따라 워낙 다양하고 제각각 깊어 지역별로 다른 나라 음식인 양 개성이 다르다. 4대 요리로 산둥(노), 쓰촨(천), 장쑤(소), 광둥(월)를 꼽는다. 8대 요리로는 산둥, 쓰촨, 화이양, 광둥, 안후이, 후난, 푸젠, 저장 요리를 꼽는다. 좀더 넉넉하게 10대 요리를 꼽을 때는 베이징과 상하이를 독립시켜 보태는데, 이 중 매운 맛에 특화된 것이 쓰촨과 후난 요리다.
쓰촨의 매운 맛은 맵지만은 않다. ‘중국의 음식문화’(이해원 저ㆍ고려대학교 출판부)에 따르면 쓰촨의 매운 맛은 마늘과 후추, 쓰촨 산초, 생강을 기본으로 사용해 맵고, 시고, 향기로운 것이 특징이다. 특히 쓰촨 산초의 싱그러운 산미는 얼얼함과 맵기보다 더욱 계속 그것을 찾게 하는 힘이다. 매운 맛의 세계 수도라 할 수 있는 쓰촨에서는 매운 맛도 간향랄(干香辣), 소향랄(?香辣) 유향랄(油香辣), 방향랄(芳香辣), 첨향랄(甛香辣), 장향랄(醬香辣) 등으로 구분할 정도로 매운 맛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고추와 훈제 고기를 많이 사용한 후난 요리의 매운 맛은 맛과 향이 강하고 신선하며, 맵고, 시고 동시에 부드럽다.
쓰촨성의 수도인 청두시는 한국의 여름이 우스울 정도로 덥고 습하다. 이열치열을 그 누구보다도 생활로 실천하는 이들인 것이다. 서울 서촌의 쓰촨 음식 전문점 ‘마라샹궈’ 고영윤 오너 셰프에 따르면, 쓰촨 음식에는 한약재가 풍부하게 사용된다. 그는 “훠궈의 새빨간 마라 육수는 덥고 습한 날씨에 지친 몸을 보하는 각종 한약재가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라며 “단지 얼얼하고 매운 맛을 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데, 최근의 훠궈 육수는 그 의미가 퇴색해 아쉽다”고 말했다.
쓰촨 음식의 매운 맛은 한 마디로 “마!”라고 설명할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매운 것이 아닌 다른 것이 더 큰 특징이다. 쓰촨 음식은 한 마디로 ‘마랄(麻辣)’인데, 흔히 ‘마라’라고 하는 이 단어는 두 가지 맛에 대한 설명이다. ‘랄’은 우리도 익히 잘 알고 있는 고추의 매운 맛이다. 고추에 들어있는 캡사이신이 담당한다. 더 중요한 쓰촨 음식의 특징인 ‘얼얼함’을 뜻하는 ‘마’는 ‘랄’과 마찬가지로 통각을 주는 매운 맛인데, ‘맵다’보다 ‘얼얼하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강한 탄산이 든 음료를 마셨을 때의 따끔거리는 통각 또는 9볼트 건전지에 혀를 댔을 때 느껴지는 혀끝이 멍해지는 찌릿찌릿하고 얼얼한 감각 같은 통증을 준다. 산쇼올이라는 화합물이 담당하는 고통의 맛인데, 캡사이신이나 후추의 피페린 같은 고약한 족속이다. 동시에 중독되도록 매력적인 고통이다.
‘마’한 맛을 내는 향신료는 화초(花椒)다. 흔히 ‘화자오’라고 부르며, 산초로 눙쳐 부르기도 하지만 한국이나 일본의 산초 또는 제피와 달라 ‘쓰촨 산초’라 하는 것이 정확하다. 둘은 비슷하면서 다른 산초 친척이다. 화자오는 기본적으로 레몬과 똑같은 청량한 향을 내 신맛이 나고 향도 싱그러운데, 좀더 세분화하면 청화자오와 홍화자오로 나뉜다. 롯데호텔서울 중식당 ‘도림’ 여경옥 셰프는 “청화자오와 홍화자오는 다른 나무에서 나는 서로 다른 종화자오”라며 “푸른 빛을 띄는 청화자오는 신 맛과 얼얼한 맛이 더 강하고, 화자오는 아린 맛은 덜하지만 향이 좋아 쓰임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쓰촨에서는 청화자오를 주로 사용한다고 한다. 여 셰프는 “중국에서는 쓰촨성뿐 아니라 궈저우성을 비롯해 산지마다 다른 품종의 화자오를 생산하며, 맛도 향도 제 각각이라 현지 요리사들도 모두를 정확히 알고 있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중국 재료 도ㆍ소매상과 식당에서는 청화자오를 ‘마자오’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에서도 ‘마자오’라는 말은 낯선 것이 아니다. 쓰촨과 궈저우의 화자오가 다른 지역 것보다 얼얼한 맛과 향이 강해 특별히 마자오로 불리기도 한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매운 맛으로 명성을 뻗치고 있는 쓰촨음식 전문점 ‘라라관’ 김윤혜 오너셰프는 중국 청두에서 쓰촨음식을 배웠다. 그는 “청두에서는 ‘마자오’라는 말을 쓰지 않기도 하고, 마라탕이 아닌 다른 요리 이름이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는 충격적 이야기를 전했다. “마자오는 쓰촨성 바깥 지역 사람들이 쓰촨음식의 ‘마’한 특징을 화초 앞에 붙여 ‘마초(麻椒)’, 즉 마자오라고 부르는 것 같다. 마라탕이 쓰촨성에 없는 것은 쓰촨 음식의 탕은 당연히 ‘마라’하기 때문에 굳이 마라탕이라고 부를 것 없이 탕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해물탕’과 ‘매운탕’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김 셰프의 설명이다.
그리하여 ‘마라한’ 마력의 쓰촨음식 중 무엇을 먹으면 되는가. 우선 손댈 메뉴는 널리 퍼져 어디서나 맛보기 쉬운 한국의 대표적 쓰촨음식이다. 한 가지나 두 가지, 또는 네 가지 끓는 육수에 갖은 재료를 담가 먹는 중국식 샤브샤브인 훠궈, 맵고 얼얼한 국물과 풍성한 재료의 조화가 일품인 마라탕, 고기, 해산물과 갖은 채소, 얇게 띄운 피두부부터 햄과 소시지까지 온갖 재료를 취향대로 골라 볶는 마라샹궈, ‘롱시아’로 읽히는 작은 가재 ‘소용하(小??)’를 얼얼한 양념에 볶아낸 마라롱샤, 기성 중국집 마파두부와 양념부터 다른 마파두부, 수북한 말린 고추 안에 튀긴 닭조각을 뒤섞어 고추향을 진하게 씌운 라즈지가 쓰촨요리 열풍의 주인공들이다.
차이나타운 어디서나 맛볼 수 있으며, 서울 홍대 앞 ‘소고산제일루’와 연남동 ‘삼국지’ 동대문 ‘동북화과왕’ 등 이름난 중국 음식점에서도 마라의 향취를 경험할 수 있다. 초심자를 위해 난이도별로 찾아갈 만한 네 곳 음식점 정보를 정리했다. 마라의 세례를 받으면 처음은 낯설지라도 대번에 입 안이 황홀할 것이나, 다음날 아침까지 소화기관을 따라 얼얼함과 매운 맛이 이어지니 신중히 선택하기를.
<이해림 객원기자>
쓰촨(사천) 음식은 비주얼부터 이미 울긋불긋해 화려하다. 맛 또한 화려하다. 맵고 얼얼한 통각에 오미가 어우러진다. 서울 서촌 ‘마라샹궈’의 훠궈. <강태훈 포토그래퍼>
쓰촨음식의‘마라함’을 만드는 결정적 재료. 왼쪽 둥근 고추부터 시계방향으로 채친 고추, 홍화자오, 청화자오, 일초, 쥐똥고추, 가운데는 쓰촨고추. <강태훈 포토그래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