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적 품종 부사
연중 흔하다보니‘맛없다’오해
제철에 먹으면 누구나 반해
당도·산 조화 이뤄야 새콤달콤
향과 질감도 맛을 좌우
가을이 왔다는 신호 중 하나가 새빨간 사과다. 추석 명절이 가까워 오면 슈퍼마켓마다 인터넷 사이트마다 사과 선물 세트 광고가 걸리기 시작한다. 큼직하고 새빨갛고 윤기 나는 사과가 상자 안에 가득 찬 것을 보면 명절의 실감이 들기 시작한다. 우선 추석 선물용으로 정말 맛있는 사과를 고르는 팁. 무조건 큰 사과를 고르기보다는 이상적인 크기를 고를 것. 너무 크면 맛이 없고, 너무 작으면 시고 떫다. “현행 등급제에서는 무조건 큰 사과가 높은 값을 받아가지만 품종마다 가장 맛이 좋은 원래의 크기가 있다”는 것이 농촌진흥청 사과연구소 권순일 연구관의 얘기다. 일반적으로 260~300g 크기가 가장 맛있다. 어른 주먹만하거나 좀더 큰 크기다. 권 연구관은“신품종인 황옥이나 피크닉 등 원래 몸집이 작은 사과는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져 아쉽다. 중량별로 시장을 나누는 유통 방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대표 사과, 부사
사과는 가을에만 먹는 과일은 아니다. 하고 많은 과일 중 생산량으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그리고 흔한 과일이 사과 아니던가. 봄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사과는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그러다 보니 생긴 오해가 ‘사과는 퍼석하고 맛이 텁텁하다’는 것인데, 참 억울한 일이다. 연중 내내 공급되는 사과의 종류가 부사(후지)라는 것이 알려진 뒤로는 그 오해가 ‘부사는 맛 없는 사과’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사과는 퍼석하지 않고 텁텁하지 않다. 맛있다. 부사도 맛있다.
10월 하순이 제철인 부사 사과는 추운 날씨에 결실을 맺는 만생종 사과다. 사과 중 독보적으로 저장성이 좋아 수백 가지 사과 품종 중 저장용으로 선발돼 활약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부사는 어디서나 사랑 받는 저장용, 수출용 사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에서도 사과 생산량의 65%를 부사가 차지한다.
본의 아니게 부사가 어물전 망신 시키는 꼴뚜기 또는 물 흐리는 미꾸라지 신세가 된 것은 그 흔함에 근원이 있다. 확률상 사과 10개를 먹을 때 6.5개가 부사다. 특히 여름부터 늦가을까지 다른 품종 사과가 활약하는 때가 아니라면, 사과 100개를 먹어도 전부 부사다. 생산량도 많은 데다 저장돼 연중 공급되기까지 하니, 모든 사과가 부사인 것으로 보이는 착시가 생긴다. 그래서 맛없는 부사가 맛없는 사과를 대변하게 됐다.
두 번째 오해는 부사가 맛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저장성이 좋다 해도, 사과는 생물이다. 실온에서 보관할 때 여름 사과는 고작 일주일, 추석 전후에 나오는 사과는 3주까지 괜찮다. 가장 늦게 나오는 부사는 더 오래 가고 저온 창고에 두면 이듬해 조생종 사과가 나오는 6, 7월까지 버틴다. 맛없는 부사는 보관 상태가 좋지 못한 탓이다. 맛없는 사과는 껍질이 쭈글쭈글해지는 경향이 있다. 수분이 날아가 더 퍼석하고 세포벽이 허물어져 까끌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부사의 잘못이 아니다. 수확기도 아닌 과일을 연중 내내 먹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이 죄다.
10월 하순 나오는 제철 부사는 그 모든 오해에 고개를 빳빳이 들고 높은 당도와 적절한 산도, 촉촉한 수분과 기분 좋은 질감, 그리고 결정적으로 매력적 향기를 자랑한다. 이제까지 부사를 욕했던 자들이여, 한 달 후 제철 부사를 맛 보고도 반하지 않는지 두고 보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사과는 꿀사과?
사과 중 가장 맛있는 것은? 상인과 소비자가 생각하기에는 ‘꿀사과’가 으뜸일 것이다. 그런데 이 꿀사과는 품종 이름이 아니라 사과의 영양 상태에 대한 묘사다.
사과는 나무에 매달려 잎이 광합성으로 만들어낸 영양을 꾸역꾸역 받아 먹고 알이 차고 단맛이 오른다. 단맛이 과해지면 사과의 영양 상태에 문제가 생긴다. 바로 영양과잉이다. 몸체도 다 컸고 속도 꽉 찼는데 계속 당이 공급되면 어떻게 될까? 인간이라면 살이 찐다. 성장을 마친 성인은 옆으로라도 성장하지만 사과는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한다. 세포벽이 터진다. 과잉 공급된 당이 터진 세포벽 밖으로 흘러나와 뭉친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과육 사이사이 꿀(정확히는 그냥 당)이 뭉쳐 있어 보기에 먹음직해 보이는 꿀사과다. 밀병이라고도 한다. 이 현상이 장점이 되는 대표적 품종 둘이 부사와 요즘 흔하게 나오는 홍로다. 홍로는 추석 사과로 불린다. 부사는 ‘꿀’이 씨앗 부위에 생기고, 홍로는 껍질 가까이에 생겨 멍든 자국처럼 보이기도 한다.
농촌진흥청 사과연구소의 도움으로 사과 13종을 한 데 모았다. 우선 1㎝ 가량 크기로 잘라 생으로 먹어 봤다. 같은 두께로 자른 뒤 220도의 오븐에서 알루미늄 포일을 덮고 15분 가량 가열한 상태로도 맛봤다. 한국에서는 사과가 주로 생식용, 즉 간식이나 디저트다. 서양에서는 주요리 재료로도 쓰이므로 사과를 가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아 보기 위해서였다.
수확기가 맞지 않는 쓰가루(아오리) 같은 사과는 제외했다. 추석 사과로 분류되는 홍로, 홍장군, 히로사키 후지, 시나노 스위트를 한 부류로 묶었다. 히로사키 후지는 부사의 돌연변이 품종으로 부사와 거의 비슷한데 수확기가 20일 가량 빠르다. 다소 부족하지만 부사와 거의 비슷한 맛과 향을 낸다. 팬이 많은 고전적 품종인 홍옥도 추가했다. 홍옥의 적기는 10월초로 아직 이르지만, 조숙한 것이 유전자원포에 몇 알 있었다. “과거의 향수로 홍옥을 많이 찾지만 지금 먹으면 너무 시큼해 취향이 갈리는 사과”라는 것이 권 연구관의 평가다. 예전에 먹던 홍옥과 맛이 많이 다른데, 재배 환경이 달라져 과실의 특성이 바뀐 것이다. 요즘 같은 밀식 재배 환경에선 조직감이 떨어져 실망할 수도 있다.
국내 유통되지 않는 사과도 한 부류로 묶었다. 우선 각각 전 세계 생산량 1, 2위를 차지하는 레드 딜리셔스, 골든 딜리셔스. 가공용으로 쓰이는, 과육이 붉은 레드필드와 가공과 생식 겸용인 브레이번까지 총 네 종류다. 신품종으로는 아리수, 피크닉, 황옥, 루비에스까지 네 품종을 맛봤다. 권 연구관이 1993년부터 20년간 육종해 2013년 등록하고 보급한 묘목이 이제 장성해 최근 출하가 시작된 품종이다.
사과는 당도가 굉장히 높은 과일이다. 예전 국광과 홍옥 품종이 사과의 지배자였을 때보다 최근 당도가 더욱 높아졌다. 시식한 사과 중 추석 사과의 당도는 각각 홍로가 14.5브릭스(100g에 당이 1g 담겨 있으면 1브릭스), 홍장군과 히로사키 후지가 13.5브릭스, 시나노 스위트는 15브릭스로 가장 높다. 신품종인 황옥은 당도가 16.5브릭스에 달하기도 한다. 딸기 중 단 것이 13브릭스 이상이니 당도만 보면 딸기와 비슷하다. 하지만 사과는 딸기만큼 달콤한 이미지는 아니다. 비밀은 산도에 있다. 황옥의 산도는 0.45%로 매우 높다. 홍장군과 히로사키 후지, 시나노 스위트도 모두 0.3%가량으로 새콤한 산미를 터트린다. 산은 당을 잡는다. 동시에 당은 산을 받쳐준다. 새콤달콤, 그것이 사과의 이상적 맛이다. <이해림 객원기자·강태훈 포토그래퍼>
푸른 하늘 가을 볕, 그리고 추석 연휴. 사과의 계절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