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일행이 들어온 남문 지나면 가장 높은 곳에 ‘수어장대’ 위용
‘치욕의 절정’ 밴 서문 끼고 돌면 시원하게 땀 식히는 내리막 이어져
‘남한산성의 종로’였던 로터리에선 막걸리·안주 파는 식당들 ‘손짓’
여행에는 두 가지 방식이 존재한다.
먼저 여행자가 능동적 주체가 돼 이리저리 길을 개척하는 경우다. ‘잘못 들어선 길’에서 우리는 책상머리에선 미처 계획하지 못한 기적을 만나곤 한다.
반대로 공간이 간직한 역사적 배경과 맥락에 온전히 내 몸을 맡길 수밖에 없는 여행도 있다. 오랜만에 얻은 휴가든 일생에 단 한 번인 신혼여행이든, 독일 홀로코스트 묘지에서 여행자가 ‘나’를 앞세우기란 불가능하다. 참담한 마음으로 울음을 삼키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가을의 초입에 들어선 한낮에 찾은 경기도 광주시의 남한산성이 그랬다. 한 시간 반 남짓 성 안을 둘러보는 동안 마음은 착 가라앉았다. 먹구름을 잔뜩 품은 흐린 하늘 때문만은 아니었다. 역사를 알고 남한산성을 찾는다는 것은 역시 어쩔 수 없나 보다. 청 태종에게 머리를 조아렸던 인조의 굴욕을 잊으려 해도 떨쳐내기 힘들었다.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출발해 올림픽대로와 동부간선도로를 거쳐 남한산성에 닿기까지 한 시간이면 족했다. 총 둘레가 8km에 이르는 남한산성은 ‘동서남북’ 네 개의 문으로 통한다.
정문에 해당하는 남문(지화문) 갓길에 차를 세우고 발걸음을 옮겼다. 청나라의 공격에 도성을 빠져나온 인조 일행이 남한산성 안으로 피신한 것도 이 남문을 통해서였다. 남문에서 1.5㎞, 느릿느릿 20분 정도 걷자 수어장대(守禦將臺)가 위용을 드러냈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세운 4개 장대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건축물이라고 한다. 원래 단층이었으나 영조 때 2층 누각 형태로 개조한 수어장대는 남한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실제로 성곽을 따라 멀리 내다보며 적을 감시하고 주변을 살피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다. 입추(立秋)를 지난 지 오래지만 곳곳에는 느티나무와 떡갈나무, 층층나무가 사력을 다해 마지막 남은 신록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수어장대를 벗어나 다시 성곽을 따라서 서문을 향해 걸었다. 서문에 이르는 길은 역사적 치욕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행로다. 1636년 12월14일 새벽, 척화파와 주화파의 피 튀기는 논쟁을 뒤로하고 항복을 택한 인조는 47일 만에 서문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지금의 송파구 장지동·문정동·삼전동을 지나 삼전나루터 바닥에 무릎 꿇고 머리가 땅에 닿을 때까지 아홉 차례 몸을 숙였다. 이후 청과 군신관계를 맺은 조선의 경제는 파탄 났고 백성들은 굶주림으로 고통 받았다.
역사의 굴욕이 짙게 밴 서문을 지나쳤기 때문일까. 다시 북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자 마음이 한결 가뿐해졌다. 굽이굽이 휘어지는 성곽을 따라 가파른 내리막이 선물처럼 나타났다. 여름의 기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9월 중순, 오르막을 걸으며 흘러내린 땀이 내리막을 만나 식어 내렸다. 흥(興)과 망(亡), 성(盛)과 쇠(衰)는 결코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했던가. 남한산성을 걸으며 역사와 자연의 섭리를 새삼 깨닫는다.
소설가 김훈도 그의 작품 ‘남한산성’에서 희망과 절망이 한 덩어리임을 강변하지 않았던가. “옛터가 먼 병자년의 겨울을 흔들어 깨워, 나는 세계악에 짓밟히는 내 약소한 조국의 운명 앞에 무참해졌다. 그 갇힌 성 안에서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한 덩어리로 엉켜 있었고,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고.
북문을 끼고 돌아 내려오자 둥그런 로터리가 나왔다. 막걸리와 안주를 파는 식당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이 로터리는 조선시대에도 사방의 길이 교차한 중심지였다. 산간도시 남한산성의 종로거리였던 셈이다. ‘종로’는 서울의 특정 지역을 일컫는 지명이 아니라 각 도시 중심가에 공통적으로 부여된 이름이었다.
시간이 남는다면 산성 안에 있는 절터를 둘러보는 것도 좋다. 일제시대 의병 집결지였던 사찰들이 재로 변한 현장이다. 천주교 순교성지, 만해기념관 등 로터리 인근의 볼거리들도 추천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지하철 8호선 산성역 2번 출구로 나와 9번 버스를 타고 들어가면 된다. 9번 버스는 성남 야탑역에서 출발해 산성 로터리까지 들어온다. 입장료는 따로 없고 주차 요금은 하루 1,000원이다. <글·사진(경기도 광주)=나윤석 기자>
굽이치는 남한산성의 성곽 위로 푸른 하늘이 넓게 펼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