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 어려워 제철 금방 지나
품종마다 수확시기도 달라
맛있을 땐 품종이름 기억을
달콤하고 새콤하고 아삭아삭한, 또는 달달하고 보들보들한 과일. 여름이 즐거운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복숭아다. 또, 1년 내내 여름을 애타게 기다리게 되는 이유도 다름 아닌 복숭아다. 맛있는 복숭아를 먹었다면, 이름을 적어두자. 복숭아는 품종을 기억해가며 먹어야 하는 과일이다. 각각의 특징이 다르고 나오는 시기도 일정하게 정해져 있어 ‘딱 그 때’ 찾아 먹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때문이다. 시설 재배 덕분에 농작물 제철이 이리저리 이동하고 있지만, 복숭아는 여전히 여름 제철 과일이다. 인력으로 제철을 바꾸지 못하고 자연이 키우는 대로 받아 먹어야 한다.
▶ 6월부터 복숭아의 계절
보관도 안 된다. 복숭아는 과육과 과피를 이루는 조직 특성이 사과나 배와는 완전히 다르다. 너무 무르다. 수확 후 에틸렌이 급격히 발생하는 것도 결정적 차이다. 사람을 늙게 하는 것이 과로와 스트레스인 것과 마찬가지로, 과일을 노화시키는 것이 바로 에틸렌 호르몬이다. 그래서 복숭아는 보관해 놓고 먹기 어렵다. 제철 잠깐이 아니면 먹을 수 없다. 예외가 있긴 하다. “복숭아 중 유명 품종은 수확 후에도 에틸렌이 발생하지 않아 잘 무르지 않는다”는 것이 농촌진흥청 과수과 남은영 연구사의 설명이다.
가장 빠른 복숭아는 6월 중하순에 등장한다. 7월 상순까지 수확하는 조생종 복숭아다. 미홍, 지요마루, 유미 등이 대표적이다. 미홍과 유미는 털이 있고 부드러운 과육이 부드러운 백육계 복숭아다. 흔히 이런 복숭아를 백도라고 부르는데, 백도는 품종명이다.
미홍과 유미는 신맛이 적은 대신 단맛이 풍부하고 과육이 부드러워 저장이 잘 안 되는 게 아쉽다. 유미는 특히 ‘복숭아 향’이 강한 게 장점이다. 지요마루는 크기가 아담한 황육계 복숭아(황도)인데 역시 털이 있다. 부드럽고 노란 속살은 7월 초 장맛비를 맞아도 당도를 잃지 않아 인기 있는 품종이다.
7월 중순부터 현재까지 우리가 먹은 복숭아는 중생종이다. 아카쓰키, 그리고 천도복숭아 천홍 등이다. 아카쓰키(赤月ㆍ붉은 달)는 재배면적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는 품종인데 털이 있는 백육계의 부드러운 복숭아다.
신맛이 적고 단맛이 많다. 천홍은 단단한 상태에서 유통되기 때문에 신맛이 강할 때 먹게 되는데, 후숙해 말랑하게 먹으면 달콤한 풍미와 향이 강해진다.
여름 습기가 물러가 건조하고 가을 햇살이 강한 시기에 나오는 만생종 복숭아가 1년 중 가장 맛있다. 지금부터 10월까지 먹게 될 만생종 복숭아로는 천중도백도, 장호원황도, 유명 등이 있다. 천중도백도 역시 털이 있는 백육계 복숭아다.
유명은 2002년까지 가장 많이 재배돼 한국 복숭아를 대표했던 품종이다. 단단한 백도의 대표 주자라고 할 수 있다. 장호원황도는 9월 중하순, 올해는 10월초 추석을 전후해 쏟아져 나올 예정인 황육계 복숭아인데, 신맛과 단맛의 균형이 잘 잡히고 향기 또한 일품이다.
잠깐, 복숭아 박사가 맛있다고 인정하는 복숭아 품종은 무엇일까? 좀 복잡하다. 복숭아엔 취향과 기호가 많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일단은 알레르기 문제가 있다. 복숭아, 특히 털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꽤 많다. 무엇보다 복숭아 질감에 대한 기호는 거의 종교다. 딱딱한 것과 말랑한 것, 닭의 다릿살과 퍽퍽살에 대한 취향 만큼이나 배타적으로 갈린다. 언제 먹는가도 중요한 문제.
그리하여 복숭아 박사 남은영 연구사의 추천은 다음과 같다. “수확기로 나누면, 조생종 중엔 지요마루와 유미, 중생종은 아카쓰키, 만생종은 진미와 장호원 황도를 꼽는다. 털이 있는 것 중엔 지요마루, 유미, 아카쓰키, 진미, 장호원황도를 고르면 좋다. 털 없는 복숭아를 먹는다면 신비, 옐로드림, 천홍, 환타지아, 설홍 등 천도복숭아 계열을 추천한다. ‘딱딱이 복숭아’ 중에선 경봉과 유명이, ‘말랑이 복숭아’ 중에선 유미와 아카쓰키가 권할 만하다.”
▶ 도넛인가, UFO인가. 납작한 신종 복숭아
새로운 녀석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달구고 있다. 유럽, 미국 등에서 경험한 ‘도넛 복숭아’ ‘토성 복숭아’ ‘UFO 복숭아’가 그리도 맛있단다. 정식 명칭은 ‘반도’인데, 복숭아를 납작하게 눌러놓은 모양이 특징이다.
몇 해 전부터 슬슬 한국에서도 재배되고 있는데 아직은 서울 강남의 백화점에서나 잠깐 판매하고 마는 정도다. ‘거반도’ 품종이 일단은 확산되고 있다.
복숭아는 크게 복숭아(Peach)와 찾기(Nectarine)로 나뉘는데 찾기는 흔히 우리가 부르는 천도 복숭아 계열을 일컫는다. 복숭아에 변이가 발생해 털이 없어진 것이 정체다. 그렇다면 이 반도라는 녀석은 무엇인가. 찾기와 마찬가지로 돌연변이다. 찾기 중에도 반도로 변이된 품종이 있다. 반도는 외형이 달라졌을 뿐, 맛은 그냥 복숭아다. 맛이야 있다. 하지만 동그란 복숭아보다 맛있냐고 한다면, 아니다. 남 연구사의 표현에 따르면 “일반 복숭아만큼 맛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여행 중 먹은 반도가 맛있었던 것은 ‘원래 복숭아는 맛있기 때문’이다.
과육에 수분이 많고, 특히 물렁한 복숭아는 입으로 베어 먹기가 쉽지 않다. 과즙이 줄줄 흐른다. 그런데 모양이 납작한 반도는 한 입에 쏙 베어 물 수 있는 두께다. 간편 소비에 적합하다. 유통만 해결된다면 편의점에서 ‘세척 사과’처럼 팔 수도 있는 품종이라는 뜻이다. 털이 없고 껍질째 먹는 천도복숭아 계열 반도는 더욱이 유리하다. 아직은 재배 문제가 있다. 반도는 꼭지에 병이나 흠이 생기기 쉽다. 생산성 또한 남은 숙제다.
▶ 보다 완벽한 다음 세대의 복숭아는?
이 이야기가 다 그림의 떡으로 보이는 이들이 있다.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 이들이다. 아마 글만 읽어도 복숭아 털이 떠올라 간질거렸을 수많은 이들이 있다. 복숭아 알레르기 유발 물질 백도보다 황도에 더 많고, 털에 가장 많으며, 그 다음이 과피, 과육 순으로 들어 있다. ‘천도복숭아는 괜찮은데, 일반 복숭아는 안 되는’ 이유다. 물론 과육에도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있으므로 복숭아 알레르기가 심한 사람에게는 천도복숭아 역시 위험하다.
농촌진흥청은 맛이 좋을 뿐 아니라 먹기 편하고, 알레르기 위험도 낮은 복숭아 신품종을 바라고 있다. 천도와의 교잡을 다양하게 시도 중이다. 털이 없어 알레르기 위험이 낮은 천도의 장점을 가져오고, 먹기가 편한 대신 산미가 강한 천도의 단점은 보완한 완전히 새로운 복숭아를 개발해 보급하는 것이 목표다. 이미 한 종류는 시중에서도 구할 수 있는데, 천도복숭아의 신맛을 줄인 달콤한 옐로드림 품종이다.
보관해 놓고 1년 내내 출하하는 사과와 달리 복숭아는 여름에만 반짝 나오는 과일이다. 200여 종에 달하는 각각의 복숭아 품종을 먹을 수 있는 기간은 고작 일주일에 불과하다. 나무에 열매가 달리고 익으면 그때가 유일한 먹을 수 있는 시기다. 여름 한 철이기에 아쉽고 더 귀중한 복숭아의 맛, 한달 반 남짓 남았다. 맛이 최고조인 만생종 복숭아도 마침 시작된다. 그렇게 덥더니, 어느새 가을의 초입이다. <이해림 객원기자>
<사진 농촌진흥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