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인 6월의 마지막 날, 뉴욕 브롱스-레바논 병원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은 2년전 이 병원에서 근무하다 해고당한 한 의사의 보복범죄로 밝혀졌다. 2014년 8월 채용되어 6개월 만에 직장 내 성희롱 혐의로 사실상의 해고인 권고사직을 당한 헨리 벨로(45)는 이날 소총을 흰 가운에 숨긴 채 병원에 들어와 16층과 17층을 돌아다니며 총기를 난사한 후 경찰과 대치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0대 후반에 카리브해지역의 의대를 졸업한 늦깎이 의사 벨로의 마지막 주소는 한 노숙자 쉘터였다.
벨로의 총격에 환자 1명, 의대생 2명, 의사 3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리고 1명의 여의사가 사망했다. 택시기사의 딸로 어려운 환경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중국계 이민 2세 트레이시 신-이 탐, 벨로가 해고된 후 1년이 넘어 이 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한, 벨로와는 마주친 적도 없는, 환자들에게 정말 다정했던, 가정의학 전문의였다.
닥터 탐은 그날 오후 17층의 회진을 담당한 의사가 아니었다. 보통 1층의 가정의료 클리닉에서 사우스브롱스 지역에서 오는 환자들을 보는 것이 그녀의 주 업무였다.
금요일 오후 동료의사의 부탁으로 당직을 대신하다 숨진 탐의 소식을 듣고 퀸즈에 위치한 그녀의 집으로 달려온 친구 주드 베클스-로스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트레이시는 동료의 그런 부탁을 결코 거절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아직 초년생 의사였지만 탐은 이미 배려심 깊고 성실한 의사로서 상당한 명성을 쌓았다. 아버지가 택시 기사였던 가정에서 자란 탐은 어렵게 의대에 입학했으나 성실한 노력 끝에 졸업 무렵엔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고 그녀의 스승들과 동료들은 전한다. 그러나 탐은 계속해서 의사의 손길이 절실하지만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에 의사가 부족한 동네에서 근무하는 것을 선택했다. 요즘 젊은 의사들이 가기를 꺼려하는 지역이 대부분이었다.
환자의 70%가 메디케이드 수혜자인 브롱스-레바논도 그런 병원이었다. 이곳의 가정의학 전문의는 신체의 병을 넘어 가정불화 등 감정적 상처를 치유하는 역할까지 담당하는 게 보통이라고 이 병원 내과과장 스리다르 칠리무리는 말한다. 심신을 지치게 하는 이런 환경이 젊은 의사들의 이상주의를 갉아먹는 게 보통이지만 탐은 놀라울 만큼 자신의 이상주의를 고수해 인상적이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런 환경에서 젊은 의사들을 훈련시키는 것은 정말 힘들지요. 여기서 하는 일을 하면서 이상을 잃지 말라는 것은 불가능하니까…그게 가능한 젊은 의사를 잃었다는 것은 우리에겐 정말 엄청난 손실입니다”
탐은 2011년 첫 졸업생을 낸 튜로 칼리지 의대를 2013년 졸업했다. 할렘의 오래된 백화점 건물이 캠퍼스인 이 의대는 소수계 학생들의 의료계 진출을 장려해 의료 서비스가 부족한 이런 지역에서 의술을 베풀도록 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다.
탐은 의대 진학을 위한 1년 코스를 제공하는 튜로 칼리지의 석사학위 프로그램에서 시작, 높은 성적을 받아 내 4년제 의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탐과 함께 이 프로그램을 택해 밤늦게까지 공부하며 의대에 입학해 2013년 드디어 함께 졸업한 닥터 제니퍼 돌체-메다드는 지난해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탐과 함께 “우리가 해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니?”라고 감격했던 일을 회상했다. “그때 우린 마치 둘이 함께 무언가를 정복해낸 것 같았지요”
탐은 성실한 의사였을 뿐 아니라 환자들을 진심으로 배려하는 다정한 의사였다. 그녀의 레지던트 과정을 지도했던 닥터 이야드 베이커는 한 환자의 가족이 탐에 관해 할 이야기가 있다고 연락해온 일을 기억한다. 이런 연락의 대부분은 레지던트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러나 탐은 달랐다. 환자의 가족은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표하고 싶다고 했다.
상냥한 미소와 겸손한 태도로 환자와 동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탐의 삶에서 의사라는 직업과 함께 포커스를 이룬 것은 그녀의 가정이었다. 중국에서 이민 온 부모 및 여동생과 함께 살던 퀸즈의 이층 벽돌집 앞엔 누군가가 갖다놓은 꽃다발이 놓여 있을 뿐 가족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 친척이 나와 가족들은 지금 아무 말도 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전했다.
“한 아름다운 삶이 어떻게 이렇게 끝날 수가 있느냐”고 개탄한 탐의 스승 닥터 나그마 버니는 “그녀는 수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고 이 지역사회에 많은 것을 더할 수 있었던 사람”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탐이 늘 갖고 다니던 노트북 표지엔 닥터 버니가 들려주었던 조언, “환자들은 당신이 얼마나 많이 아는가엔 관심이 없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당신이 얼마나 ‘케어’ 하는가이다”란 의사의 자세가 모토처럼 쓰여 있었다.
벨로는 2010년 카리브해 지역의 도미니카 로스의대를 졸업 후 1991년~2006년 사이 캘리포니아를 들락거리며 살았다. 그가 미국에서 태어났는지는 불분명하지만 10대 후반에 소셜시큐리티 카드를 발급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30대 후반에 의사를 향한 첫발을 내딛은 벨로의 인생 여정은 전혀 평탄하지 않았다.
2006년 캘리포니아에서 파머시 테크니션 라이센스를 받은 그는 20대 후반인 2000년에 산타바바라에서 파산을 신청했으며 2004년 뉴욕에선 23세 여성을 성추행하고 불법 감금한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당시 경범죄로 처리, 기록에 남지 않아 후에 병원이나 시 보건국에 취업할 때 신원조회에서 별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마지막 주소는 맨해튼의 이스트 30가에 위치한 홈리스 쉘터로 나타났다. 그곳의 한 거주자는 사건 발생 1주일 전에도 그곳에서 벨로를 보았다고 전한다. 말끔하고 단정한 옷차림과 스타일리시한 안경 등으로 전혀 노숙자 같지 않았던 벨로는 쉘터에서 단연 눈에 뜨이는 인물이었다. “정신병이 직업을 가리나요? 의사일수도, 변호사일수도, 판사일수도 있는거지…”라고 쉘터의 한 거주자는 말했다. 벨로는 브롱스-레바논 병원에 취업했던 당시에도 또 다른 쉘터에 거주했는데 그곳은 마약중독 노숙자들을 위한 쉘터였다.
쉘터 거주 중간중간 아파트에 살 때도 있었다. 아파트의 이웃이었던 한 여성은 당시의 벨로는 늘 공손하고 친절했던 “나이스 가이”였다고 기억했다.
<뉴욕타임스-본보특약>
지난주, 해고된 의사의 무차별 총격난사 사건으로 1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당한 뉴욕 브롱스-레바논 병원에 출동한 뉴욕시 경찰들이 현장을 떠나고 있다.
●희생자 트레이시 탐
촉망받던 중국계 이민 2세
동료 대신 당직하다 참변
●총격범 헨리 벨로
30대 후반 해외 의대 졸업
파산·체포·노숙자쉘터 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