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페루 여행의 장점을 묻는다면 몇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이국적이다.
한국과의 접점이 현격히 적다. 먼 나라 미국이나 유럽은 가보지 않아도 가본 것 같다. 여행하지 않아도 한국에 잠식한 프랜차이즈 카페, 레스토랑을 통해서 먼저 맛볼 수 있다. 페루는 여느 남미와 마찬가지로 전혀 다른 얼굴, 다른 언어, 다른 풍속, 다른 음식이다.
둘째 밀당의 고수다.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한다. 한없이 경이로운 자연에 기쁘다가도, 다각도로 치고 들어오는 도둑과 사기 행각에 기겁한다. 끝도 없는 증오심에 불타오르다가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환희를 안겨준다. 환희의 상대는 사람이기도, 풍경이기도 하다.
오늘의 우아라즈 투어는 애초에 기대감이 제로였다. ‘많이 그리고 싸게’, 첫날 만난 ‘삐끼’의 박리다매 영업전략에 달랑 사진 한 장 보고 엉겁결에 승낙했다. 사진 속엔 갓 쪄낸 백설기 같은 빙하 앞으로 기능성 점퍼를 입은 외국인 커플이 하얀 이를 드러냈다. 좁은 테라스에서 말을 섞은 캐나다 커플 여행자는 갓 이곳을 다녀왔다고 했다. 우아라즈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했고, 숨조차 쉬기 힘들 거란 말도 흘렸다. 어쩌다가 얻어걸린 그곳, 눈 덮인 파스토루리(Nevado Pastoruri). 5,250m란 숫자는 그저 ‘참 높군’이란 느낌뿐이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어떤 영화의 클리셰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투어버스는 이제 익숙해진 우아스카란 국립공원으로 진입했다. 다만 오늘은 초여름 같다. 대초원과 산비탈엔 소와 양이 고개를 파묻어 풀을 뜯고, 온천인 아구아스 가시피카다스 데 푸마팜파에선 부글부글 기포를 내며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어 안데스 고산지대에만 허락된 거대식물 푸야 데 라이몬디가 도로 양 옆으로 숲을 이뤘다.
얼마나 기구한 운명인가. 100년 가까운 세월 속에서 딱 한번 꽃을 피우고 장렬히 생을 마감한다. 투어버스는 구름을 몰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 곳으로 툴툴 올라갔다. 1시간 후 모진 안데스 날씨도 견뎌온 고령 식물이 사라질 때쯤 잿빛 암벽과 설산 풍경이다. 창문은 뿌옇다. 초여름은 겨울로 성급히 치환되고 있었다.
“자 올라가 보시죠."
투어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몸이 육중해졌다. 해발 4,800m, 차가 닿을 수 있는 최고 지점이다. 내딛는 다리 사이로 휘이잉 들어온 바람이 앞머리를 치고 올라왔다. 땅은 발의 힘을 모조리 빨아들이더니, 몸까지 흡수해버릴 기세다. 한 걸음, 어라? 두 걸음, 엥?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이 길의 정상, 눈 덮인 파스토루리로 가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다. 말을 타거나 친히 걷거나. 당연히 후자였다. 여기선 후자가 오히려 스펙터클하다.
이미 천천히 걷고 있는데, 스스로 “천천히"란 주문을 거듭 했다. 서두르면 호흡 곤란과 두통이란 직격탄이 왔다. 맑아질 줄 알았던 정신은 멍하다. 한 가지만 또렷했다. 언젠가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할 때 한 노장 가이드가 트레커에게 물었다는 그 순간.
“올라올 때 무엇을 보았소?"
“어… 앞사람 뒤꿈치만 보았는데요..."
산을 갈 때마다 그 우스개 소리가 떠올라 습관적으로 앞과 뒤, 옆을 보려고 했다. 목적만 있는 이동일 때 여행자는 괴롭다. 이동 역시 여행이다. 앞으로는 길쭉하고 두꺼운 스테이크처럼 눈이 보이고, 뒤로는 설산 형제들이 구름 떼 아래 병풍을 쳤다.
정상은 천천히 왔다. 탈환의 기쁨은 한 자리에서 360도 파노라마로 돌아 보는 것으로 대체했다. 눈 이불을 덮은 암벽과 빙하가 호수에 반사되는 일각의 순간, 세상의 조각 작품을 울게 하는 자연 발생 빙하 조각물, 잿빛 호수 위로 나이테를 그리는 빙하의 유랑.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세상사 아무것도 아니다. 한없이 낮아지고, 겸손해졌다. 그 풍경을 오래, 모두 담아내려고 빙하 동굴 속에서 호수를 따라 한참을 서성거렸다.
<강미승 칼럼니스트>
이탈리아의 글쟁이와 사진작가는 이 광경을 어찌 글로, 사진으로 담아야 할지 정신을 놓고 있다고 했다.
인간의 발이 되는 이곳 말들은 평생 고산병이 뭔지 모르고 살다 가겠지. 적응이란 무서운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