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개국 개성 넘치는
원예예술촌까지…
남해 봄맞이 명소
삼천포ㆍ창선대교를 지날 때부터 이미 봄이다. 다리 아래 바다색이 다르고, 차창으로 들어오는 바람결이 다르다.
경남 남해는 행정지명이기도 하지만 한반도의 남쪽바다를 아우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부르는 산과 섬과 바다의 아름다움을 고루 갖췄고, 그 덕분에 이 먼 곳에 자리잡은 새 삶의 터전이 또 여행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단일성은 독일마을, 다양성은 원예예술촌
뮌헨,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 베를린…. 독일어를 몰라도 이 정도 지명은 익숙하다. 구텐베르크, 괴테, 베토벤 등도 친숙하다. 독일로(Deutsche Straße)를 사이에 두고 40채의 주택엔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하얀 벽과 붉은 지붕, 그리고 그 끝자락에 푸른 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지는 남해 독일마을의 풍경이다.
독일마을 여행의 시작과 끝은 마을 꼭대기 독일광장(Deutscher Platz)이다. 동화 같은 풍경에 무작정 이끌려 마을로 내려가기 전에 먼저 ‘파독전시관’을 둘러보는 게 순서다. 이곳에 독일마을이 생긴 내력은 겉모습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 전시관은 입구에서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지하로 연결된다. ‘글릭아우프!’라고 쓰인 갱도로 들어가는 구조다. ‘살아서 돌아오라!’는 독일에 파견된 광부들이 아침마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인사말이다. 갱도를 통과하면 광부들의 고단했던 삶의 흔적들과 만난다. 맞은편에는 비슷한 시기 독일로 파견됐던 간호사들의 사진과 그곳에서의 소중한 기억들을 전시하고 있다. 독일마을은 바로 1960~70년대 돈벌이를 위해 낯선 나라에서 청춘을 바쳐야 했던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이 그리운 고국으로 돌아와 정착한 곳이다. 그렇게 마을이 형성된 지 10년이 넘었다. 그 사이 연로해진 1세대 정착민들 중 일부는 유명을 달리했고 집 주인도 바뀌었다. 현재 독일마을 입주민의 절반은 전시관의 사연과는 관련 없는 일반인이다.
광장 한쪽 귀퉁이 전망대에 오르면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길은 마을의 중심도로인 독일로(路)에서 가지를 치고 있다. 골목 이곳 저곳을 돌아보며 사진을 찍을 수는 있지만 마당으로 들어가는 것은 금지다. 관광지이기 전에 엄연히 주민들의 생활공간이다. 소시지나 맥주를 판매하는 카페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는 사적 영역이다. 아쉬움은 독일광장으로 되돌아와서 채울 수 있다. 바이로이트라 이름 붙인 가게는 소시지를 안주 삼아 독일맥주를 마실 수 있는 식당이다. 주말이면 광장에 마을주민들이 운영하는 간이식당 도이체임비스(Deuche Imbiss)가 열린다. 간단하나마 유럽식 노천카페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날이 완전히 풀리는 4월경이면 평일에도 장이 열린다. 마을 아래쪽에는 독일마을의 인기를 등에 업고 상업지구가 형성됐다. 맥주를 기본으로 판매하는 대형 카페들이 성업 중이다.
주차장을 경계로 독일마을 뒤편 언덕에는 ‘원예예술촌’이 들어섰다. 멋 내지 않은 이름 탓에 식물원이나 공방을 연상시키지만 실제로는 일종의 동호인마을이다. 한국손바닥정원연구회 20명의 회원들이 각자 개성 넘치는 집을 짓고 마을을 형성했다. 독일마을이 정갈한 통일성을 뽐내는 곳이라면, 이곳은 세계 각국의 다양성이 조화를 이룬 곳이다. 입장료 5,000원이 아깝지 않을 만큼 새로운 세상이다.
17개국의 주거형태를 본뜬 크고 작은 주택과 정원이 각자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뽐낸다. 물론 전시용 임시건물이 아니라 실제 살고 있는 집이다. 집 안은 들어갈 수 없지만, 뉴질랜드풍 토피어리 정원, 스페인풍 조각정원, 네덜란드풍 풍차정원, 프랑스풍 들풀지붕, 스위스풍 채소정원 등 저마다의 취향을 살린 정원은 관람객들이 둘러보고 사진도 찍을 수 있도록 대부분 개방하고 있다. ‘인생샷’이 목적인 청춘들의 여행지로도 썩 어울리는 곳이다.
양떼 조형물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마당, 온 가족이 오순도순 이야기 꽃을 피우는 조각, 눈사람 초롱이 현관까지 불을 밝히는 조명, 금붕어가 한가로이 노니는 연못 등은 아이들의 동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고, 어른들에게는 언젠가 꼭 살아보고 싶은 전원주택을 꿈꾸게 한다. 일부는 각 나라를 대표하는 간단한 음식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매점도 운영한다.
자연 훼손을 최소화한 산책로도 아담하고 장미가든, 레이디스가든 등 공동정원도 계절마다 다양한 매력을 뽐낸다. 단 한가지 아쉬움은 체험관, 전시관, 식당 등의 시설이 들어선 문화관이다. 마을 가장 꼭대기에 자리잡아 외부에서는 이 건물만 눈에 띄는데, 외관은 한눈에도 딱딱해 보이는 전형적인 관공서다. 원예예술촌에서 가장 이질적이고 멋없는 건물이다.
▦독일마을 앞이 진짜 물건(勿巾)마을
독일마을도 원예예술촌도 자연부락인 물건(勿巾)마을이 아니었다면 굳이 이곳에 자리잡지 않았을 것이다. 뒷산에서 바다로 흘러내리는 지형이 물(勿)자 형상처럼 부드럽고, 좌우 산자락이 수건을 두른 것처럼 포근하게 마을을 감싸고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사실 구구한 해석이 없어도 독일마을에서 내려다보는 물건마을은 누가 봐도 아늑하고 아름답다. 이름 그대로 물건이다.
그 첫 공로는 초승달 모양의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해안선과 방조어부림(防潮魚府林)이다. 물고기를 부르는 숲이자 바닷바람과 해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는 숲이고, 오래 전 왜구가 들끓던 시기에는 마을을 숨겨주던 숲이었다. 1.5km 해안을 두르고 있는 2,000여 그루의 팽나무 푸조나무 상수리 등 아름드리 활엽수림은 이파리 하나 없는 요즘도 여전히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이 숲과 그 혜택으로 일궈 온 물건마을 풍경이 아니었더라면 독일마을에서 느끼는 정감과 아름다움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방조어부림 앞 몽돌해변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였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방조림만으로는 마을을 지키기에 역부족이었을까. 오랜 세월 자연이 빚은 몽돌해변에 앉으면 길다란 두 개의 방파제가 수평선을 가로지르고 있다. 방파제 덕분에 물건항의 수면은 호수처럼 잔잔해 졌지만, ‘촤르르~’ 파도에 쏠리던 돌멩이 구르는 소리는 사라지고 말았다. 바닷물에 씻겨 반질반질하던 몽돌에도 때가 끼어 제 색깔을 잃어가고 있다. 독일마을과 원예예술촌의 모태가 된 물건마을이 본래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되찾았으면 좋겠다.
<남해= 최흥수기자>
남해 삼동면 독일마을 전경. 아래쪽은 해안선을 따라 방조어부림이 아름다운 물건마을이다. 남해=최흥수기자
남해 별미 멸치쌈밥. 시래기 넣고 된장을 푼 국물이 구수해 쌈을 싸지 않아도 상관없다.
원예예술촌의 들꽃지붕 주택.
독일광장의 바리로이트 식당에서 판매하는 소시지와 맥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