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위로 선물
신문^잡지처럼 정기 배달
플라워 섭스크립션 껑충
플라워티 인구 늘어나고
꽃무늬 물건 수집 붐도
꽃, 꽃은 밸런타인스데이나 크리스마스, 졸업식, 입학식, 결혼식, 장례식, 어머니날 등등 특정한 날에 의례적으로 주고받는 지루한 선물이었다. 하지만 이제 꽃은 온전히, 오롯이 나만을 위해 ‘내가 나에게 선물하고 온전히 즐기는 작은 사치’가 되고 있다. 바로 스트레스와 상실감 등에서 나를 치유하는 길티 플레저인 것이다. 외식 한번 값 20~30여달러면 꽃 한 다발을 곁에 두고 마음의 상처를 달랠 수 있다.
▶립스틱 대신 ‘꽃’
스트레스가 날 때 꽃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욱하는 마음을 우아하게 달래는 사람들이다.
한인 정모씨는 사무실에서 꽃을 ‘정기 구독’한다. 신문, 잡지, 우유처럼 꽃을 정기적으로 배달받는 ‘플라워 섭스크립션'(flower subscription) 서비스다. 정씨가 2주마다 중간 크기 꽃다발 하나씩을 받아 보는 비용은 40여달러. 한 달에 100달러 미만이다.(업소마다 가격은 다소 차이가 난다). 정씨는 “외식 서너 번 안하면 되는 금액”이라며 “욱할 때마다 컴퓨터 옆 꽃병에 꽂아 둔 꽃과 눈을 맞추면서 ‘나는 소중한 존재다! 다 죽었어!’라고 주문을 건다”고 말했다.
“시들면 그만인 꽃을 산다는 죄책감 때문에 꽃이 주는 기쁨이 더 커지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야말로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ㆍ죄의식을 동반한 쾌락)’다.
꽃을 스스로 선물하는 ‘셀프 기프팅(Self-gifting) 족’이 늘면서 ‘꽃 정기 구독’ 시장은 성장가도를 구가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베니스비치에 있는 온라인 플라워 배송 전문업체 보우크스 컴퍼니의 경우 매년 200% 이상 성장을 거듭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 최대 온라인 꽃 판매 업체인 FTD 계열의 프로플라워스(Pro Flowers)는 최근 99.99달러만 지불하면 3개의 꽃다발을 원하는 날짜에 원하는 주소(최대 3곳)에 배달해주는 프로모션을 치고 나왔다.
꽃 구독 고객층도 확대되는 추세다. 업계에 따르면 꽃 구독고객의 경우 “젊은 여성이 많지만 최근에는 남성도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라며 “꽃에 빠져서 꽃 영양제나 전문가용 가위 등 장비 욕심까지 내는 구독자도 있다”고 말했다.
▶개성과 취향의 표식
'꽃을 담다'의 꽃차 '플라워 티 스틱(Flower Tea Stick)'. 통째로 말린 꽃 줄기 하나가 한 잔 분량이다. 꽃병에 꽂는 감상용 꽃이 전부가 아니다. 차(茶)로 즐기는 꽃도 있다. 미국내 꽃차 시장도 커지면서 아마존 등에서도 플라워 티 매출은 늘고 있다.
전문점에서 구입한 꽃차 한 잔을 우려 봤다. “집 앞 공원에 널린 꽃이라는 점에서 본전 생각이 들었다가 “정신 건강에 좋은 힐링비용이니까…” 마음을 고쳐 먹으니 그다지 아깝지 않았다.
지고 마는 꽃, 마시면 사라지는 꽃이 아까운 이들은 꽃무늬 물건들을 사 모은다. 촌스러움의 상징이었던 꽃이 개성과 취향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표식이 됐다.
공책, 필통, 볼펜, 머리 끈, 거울, 컵, 배지, 스티커, 가방, 운동화, 티셔츠, 스마트폰 케이스… 두 권에 10달러를 훌쩍 넘는 꽃무늬 공책도 있다.
한 한인 대학생은 “스트레스로 뻥 터질 것 같을 때마다 인터넷 샤핑몰에 들어가서 꽃무늬 아이템을 주문한다”고 했다.
▶꽃 하루라도 더 보고 싶다면
얇은 주머니 사정을 감안해 꽃을 하루라도 더 싱싱하게 살려 두고 싶은 이들을 위한 팁도 소개한다.
우선 날카로운 가위로 사선으로 잘라낸 꽃 줄기 끝 부분을 뜨거운 물에 30초간 담갔다가 꽃병에 꽂는다. 유통 과정에서 줄기에 들어간 공기가 빠져 나와 꽃이 물을 잘 빨아들이게 된다.
다음 꽃병의 물은 이틀에 한 번 차가운 물로 갈아 준다. 수돗물이든 정수기물이든 상관없다.
또 꽃을 서늘하고 그늘진 곳에 둔다. 줄기의 잎과 가시를 제거해야 물에 세균이 증식하지 않는다.
정기구독 꽃을 선택할 때는 플로리스트 웹사이트에 들어가 꾸며진 디스플레이를 참고로 하는 것이 좋다. 이중 자신과 잘 어울리는 꽃을 선택하면 된다.
또 가급적이면 제철에 나오는 꽃을 고르는 것이 더 오래 저렴한 비용으로 꽃을 감상할 수 있는 요령이다.
특정한 날에 의례적으로 주고받는 지루한 선물이었던 꽃이 이제는 온전히, 오롯이 나만을 위해 선물하고 온전히 즐기는 작은 사치가 되고 있다. 고객들이 꽃 장식을 둘러보고 있다. <이해광 기자>
LA 도심 빌딩가에 흐트러지게 피어 있는 봄꽃. 꽃은 보는 것 만으로 스트레스와 상실감 등을 치유하는 길티 플레저 역할을 하고 있다. <이해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