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샤핑 보편화되며
전통적 매장들 고전
공실률 20%… 활기 잃어
미국에서 번화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곳이 뉴욕 맨해턴이다.
한달 임대료가 수십만 달러에 달해도 빈 매장을 찾기 어려웠던 이곳에서 최근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입주하려는 업체를 구하지 못해 상점들이 몇 달째, 길게는 몇 년째 비어 있다. 매디슨 애비뉴의 진열장 유리창들은 먼지가 뿌옇고, 콜럼버스 애비뉴의 간판들은 유령처럼 희미하다. 소호의 한 매장 전면은 여기저기 낙서투성이이다. 초호화 매장들이 들어서 있던 맨해턴의 상가 거리들이 예전의 빛을 잃어가고 있다.
맨해턴 거리가 전 같지 않다. 매장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고 샤핑객들이 떼로 몰려들어 항상 북적거리던 거리들이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인근에 새로 개발된 샤핑 거리들이 고객들의 발길을 가로채고, 온라인 소매업체들이 대폭 할인으로 고객들을 빼앗아 가면서 맨해턴 상가에 손님들이 줄고 있다.
“이곳 소매업체들이 고통스런 적응을 하고 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맨해턴에서 오래 부동산 브로커로 일해온 레이프 에반스는 말한다. 워커, 말로이 & 컴퍼니 소속인 그는 지난 몇 년 어퍼 웨스터 사이드 빌딩들에 들어갈 입주자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고 덧붙인다.
관련 조사결과 중산층 밀집 지역에서 요즘 상업용 건물 공실률은 5% 정도로 좋은 상황이다. 하지만 임대료가 비싼 부유층 지역 공실률은 20%에 육박할 정도로 드러났다.
비슷한 상황이 고급 콘도 시장에서도 일어나고 있다고 부동산 중개인인 찰스 아놀드는 말한다. 미국의 정치 상황과 맞물려 외국으로부터 들어오던 자금이 주춤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매디슨 애비뉴에 있는 2,200 평방피트 면적의 매장에 들어올 입주자를 찾고 있다. 렌트비는 평방피트 당 연 1,200달러, 월 22만달러이다.
영국의 가죽 핸드백 회사인 멀버리가 9년간 영업을 하던 곳인데 1년 전 나가면서 계속 비어있다고 아놀드는 말한다. 그 건물 2층과 3층 역시 유명 스타일리스트 줄리안 파렐이 운영하던 피트니스 스튜디오와 헤어 살롱이 입주해 있었지만 현재는 비어 있다.
공급이 넘쳐나면서 가격은 물론 좀 내리고 있다. 매디슨 샤핑가의 노른자위라고 할 수 있는 이스트 57가에서 77가 사이 거리도 예외가 아니다. 보석, 양복, 하이힐 부츠 등의 부틱 매장들이 들어서 있는 그곳에서 지난 2월말 현재, 비어 있는 매장이나 렌트로 나와있는 매장이 37개에 달했다.
불과 얼마 전인 2016년만 해도 이 지역 상가 연 렌트비는 평방피트 당 평균 1,800달러였다. 지금은 평균 1,100달러로 떨어졌다고 더글라스 엘리먼 부동산의 상가 임대부서 책임자인 페이스 호프 콘솔로 회장은 말한다.
그는 현재 매디슨가 901번지의 한 상점을 마케팅 중이다. 골동품 전문점인 바디스가 40여년 입주해 영업하던 곳으로 지난달부터 비어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매장들이 시장으로 나오고 있어요. 같은 소매업체들을 두고 건물주들이 모두 경쟁을 하고 있지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있는 것 같지도 않던 지역이자 아직도 개발 중인 허드슨 야즈 같은 인근상가 지역으로 입주자들이 몰려가고 있다고 그는 덧붙인다.
입주업체가 들어선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뮤지컬 체어 게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가죽제품 회사인 보테가 베네타가 올해 매디슨 740번지에 새 매장을 열 예정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현재 이 회사 매장이 있는 매디슨 650번지 매장은 비게 되는 것이다. 전체 공실 면적은 더 늘어나게 된다.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몰려드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인근의 헤럴드 스퀘어도 공실률이 높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2015년 의류 체인업체 H&M은 총면적 5만9,500 평방피트의 복층 매장을 비우고 길 건너로 이사했다.
상가 건물 렌트비가 동네 자영업 상점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비싼 게 사실이다. 그런데 돈 많은 거대 소매업체들 역시 렌트비를 감당할 수 없거나 감당하고 싶어 하지를 않는다. 지난 10년 패션의 중심지였던 웨스트 빌리지의 블리커 스트릿 주변만 봐도 ‘임대’ 표지가 붙은 상점이 10여 군데에 달한다.
여기에는 지미 추, 마크 제이콥스, 랄프 로렌 같은 쟁쟁한 패션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던 건물들도 포함된다.
“소매업체들에게는 힘든 시기”라고 ABS 파트너스 부동산의 딘 발렌티노는 말한다. 그에 의하면 지난 10년 여 블리커 스트릿은 전성기를 누리며 건물 임대료가 월 2만 달러에서 3만2,000달러로 60%가 뛰어오르기도 했다. 이런 추가 비용을 업체들은 소비자들에게 전가시키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거리를 오가는 보행자들이 많다고 소매업체의 성공이 보장되지도 않는 것 같다. 소호의 브로드웨이 거리를 보면 그렇다. 사실 이 지역은 맨해턴에서 가장 공실률이 높은 지역이기도 하다. 휴스턴에서 캐널 스트릿에 이르는 거리에 행인들은 줄은 이어 지나가는 데도 도로변 상점들은 100개 중 20개가 비어있는 상태다.
그러니 비싸기로 유명한 소호의 렌트비가 내려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난 가을 브로드에이 선상에서 평방피트 당 연 임대료는 755달러로 지난 봄 824달러에 비해 내려갔다. 8% 정도 하락한 것이다.
이렇게 상점들은 계속 문을 닫고 나가는데 해결할 방법은 별로 없어 보인다.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너무 올렸다며 탐욕스런 건물주 때문이라고 손가락질 하기는 쉽지만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나갈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샤핑 습관이 바뀐 것이 큰 요인이다. 이는 되돌이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옷이며 책, 식품들을 아마존 사이트 같은 데서 온라인 구매하는 게 소비자들의 버릇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전통적 소매업체들의 어려움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워커 말로이의 에반스는 말한다.
에반스가 주로 일하는 콜럼버스 거리의 경우 지난 2013년만 해도 거의 모든 매장들이 입주된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은 공실률이 10%에 달한다. 그리고 지난 2월말 또 가게 하나가 문을 닫았다. 천연 로션과 비누를 팔던 레인 아프리카가 3년 동안 하던 장사를 결국 접고 말았다고 그는 말한다.
번화가로 유명한 소호의 한 상점이 낙서로 덮여있다. 소비자들이 주로 온라인으로 상품을 구매하면서 전통적 상점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맨해턴 매디슨 애비뉴의 텅 빈 상점. 골동품 전문점인 바디스가 40년 이상을 영업하다가 지난달 매장을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