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같이 잘 수 있다면 축복이지만
불가피한 이유있다면 받아들일 수도…
사랑과 행복의 필수 조건이 될 수는 없어
‘한 방=행복, 각방=불화.’ 부부 침실을 둘러싼 견고한 신화다. 하지만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장클로드 카우프만 교수는 그가 쓴 ‘각방 예찬’에서 그 신화에 도발적 물음표를 던진다. “사랑을 지속시키는 것은 부부의 의지다. 한 침대 쓰기가 아니다.” 프랑스 부부와 커플 150쌍을 인터뷰한 후 집필한 그의 책의 메시지다. 지난달 출간된 책은 20여일 만에 2쇄에 들어갔다. 책 판매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 두 가지고 눈길을 끄는데 그것은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샀다는 것과 오프라인 서점 판매는 부진하다는 것. “당당하게 들고 다니거나 특히 남편 앞에서 펴 볼 책은 아니라고 여기는 것 같다.” 출판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부부 간 각방 쓰기가 여전히 내밀한 금기의 영역이고, 주로 여성들이 몰래 꿈꾼다는 뜻이다. "각방은 무죄" vs "결별 지름길" 갈수록 깨지는 부부침실 신화에 대해 생각해보자.
▶당당하게 각방 쓰는 사람들
부부가 평생 같이 잘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러나 각방을 써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도 괜찮다. ‘한 침대 쓰기’가 사랑과 행복의 필수 조건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각방을 택한 부부들 얘기다. 배우자가 심하게 코를 골거나 체취가 지독해서, 수면 습관이 서로 달라서, 푹 잘 자고 싶어서,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갖고 싶어서, 아이가 태어나서…. 따로 자는 부부는 많지만, 터놓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 은밀한 비밀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건 가구ㆍ인테리어 업계다. 한 관계자는 “‘부부라면 한 침대’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싱글 침대 두 개를 따로 구입하는 부부들이 늘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부부 사이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기능과 디자인을 갖춘 가구가 시장의 트렌드”라고 했다.
몇 년 전까지 퀸 사이즈가 주류였던 2인용 침대의 표준 크기는 최근 들어 킹, 라지킹 등으로 커졌다는 것.
40대 이상은 다 안다는 우스개 하나. ‘한 동안 각방 생활을 한 부부가 나이 들어 방을 합치는 경우는?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을지 걱정되기 시작할 때.’ ‘생존’의 문제가 아니면 굳이 한 방을 쓸 이유가 없다는 냉소이자, 혼자 방 쓰기가 그 만큼 안락하다는 통찰이다.
‘이혼한 ○○○ 부부, 알고 보니 3년째 각방’이라는 헤드라인의 ‘각방’은 ‘결별 징조’의 은유다. 요즘 유명인들은 TV토크쇼에 나와 배우자와 따로 잔다는 사실을 거침없이 고백한다.
이충희ㆍ최란씨 부부는 “생활 습관이 달라서 9년째 각방을 쓰고 있다”고 했고, 한의사 이경제씨도 자신의 코골이 때문에 혼자 잔다고 털어놨다. 부부 의사인 홍혜걸ㆍ여에스더씨는 “갱년기에 들어서면서 침대를 따로 쓴다”고 공개했다.
그런데도 이들의 불화설은 나지 않는다. 각방 쓰기가 ‘배우자를 신뢰하고 배려하기에 가능한 생활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부부 침실이 ‘낭만적 사랑의 신성한 상징’이 된 역사는 길지 않다.
사회가 도시화, 핵가족화하면서 큰 집을 가질 수 없는 노동자 부부들이 한 방을 쓰게 됐다는 것. 서양에선 중세 말기 가톨릭 교회가 한 방 쓰기를 부부 결합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각방 쓰기, 정말로 괜찮을까?
혼자와 함께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들, 낡은 결혼 제도에 반대하고 쿨한 부부관계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책들이 최근 출간됐다. ‘각방 예찬’ ‘졸혼시대’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그래도 살 맞대고 자야 부부라는데,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데…. 부부 침실의 신화는 여전히 위력적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각방을 택한 부부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다. 각방 쓰기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도 엇갈린다. “각방을 써라”고 적극적으로 권하는 전문가는 없지만, “각방을 써도 괜찮다”는 조언에 귀 기울이면 될 듯하다.
한 부부상담 전문가는 “부부 간 친밀감과 유대감이 충분하다면 필요에 따라 각방을 쓰는 것으로 관계를 효과적으로 지속시킬 수 있다”며 “각방이냐 한 방이냐는 본질이 아니다”고 말했다.
‘부부 싸움을 한 뒤엔 꼭 같이 자야 한다’는 오랜 믿음에 대해서도 이 원장은 “감정을 제대로 후처리하지 않은 채 잠자리를 함께 하는 것만으로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위험하며 폭력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부부가 평생 같이 잘 수 있다면 더 없는 축복이지만 각방을 쓰게 됐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며 “대화와 성관계, 취미생활 등 다른 소통을 통해 친밀도를 높이면 된다”고 말했다.
물론 반론도 있다. 한 심리학자는 “불편해도 부부는 반드시 함께 자야 한다”며 “따로 지내면 감정적으로 멀어질 확률이 굉장히 높아지며, 각방 또는 별거 처방이 부부 관계를 개선시킨다는 학문적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각방 쓰기가 부부 관계의 파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살벌한 경고다.
▶함께 자고 따로 자고?
배우자와 함께 하려는 소망과 거리를 두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면 한 방에 싱글 침대 또는 요 두 개 놓고 따로 자기나 이불만 따로 덮기, 요일을 정해 각방 쓰기 등의 절충안을 고려해 보자.
‘따로 또 같이’ 자려는 부부들을 위한 ‘전동 침대(모션 베드)’도 가구 브랜드마다 나와 있다.
좌우 공간으로 가른 매트리스의 각도를 각자 자세와 체형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 부부가 함께 자는 기분은 누리면서도 최소한의 사생활을 지킬 수 있는 ‘짬짜면’ 같은 침대다.
“덜 물리고 익숙하지 않은 눈으로, 오랫동안 한 사람을 보기 위한 것.” ‘열정을 시들게 하는 제도로서의 결혼’을 고찰한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 작가 알랭 드 보통이 내린 결혼의 정의다.
배우자와 매일 밤 꼭 껴안고 잠드는 뜨거운 관계가 아니어도, 때로 혼자 있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도 괜찮다는 뜻 아닐까.
부부가 평생 같이 잘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겠지만 각방을 써야 할 불가피한 이유가 있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한 침대 쓰기’가 사랑과 행복의 필수 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함께 자기를 원하면서도 자기 공간과 수면의 질을 중시하는 부부들이 늘어나면서 매트리스 각도를 각자 조절할 수 있는 침대제품도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