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국왕 해외 순방
각국 투자 선물 안기며
제1의 원유 수출국‘쐐기’
러시아·이란 견제 의도
한 달 일정으로 아시아 순방에 나선 살만 빈 압둘 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의 행보가 연일 화제를 뿌리고 있다. 국가 원수의 ‘세일즈 외교’가 드문 일은 아니지만 세계 최대 산유국 수장의 이례적인 장기 외유에 각국은 숨은 의도를 파악하느라 분주하다.
살만 국왕의 해외 나들이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단연 호화로운 순방 면면 때문이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를 시작으로 순방에 동행한 수행원은 정ㆍ재ㆍ종교계를 망라해 무려 1,500여명. 할랄식품 등이 실린 화물 무게는 459톤에 달하고 황금색 전용 에스컬레이터와 메르세데스 벤츠 S600도 각각 2대씩 공수해 왔다.
통 큰 투자 역시 감탄을 자아낸다. 살만 국왕은 1일 인도네시아에 도착해 10억달러 어치의 경제협력 투자를 약속했다. 또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와 인도네시아 페르타미나는 60억달러를 공동 투자해 자바에 정유공장을 짓기로 했다. 그는 직전 방문지인 말레이시아에도 70억달러 규모의 투자 선물을 안겼다.
순방국 정부는 덩달아 신이 났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세계에서 무슬림 신자가 가장 많은 인도네시아는 사우디와 줄곧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며 1970년 이후 47년 만에 자국을 찾은 사우디 국왕을 한껏 예우했다.
언뜻 보면 대규모 투자를 내세워 위세를 과시하는 초호화 행차가 빈축을 살 법하다. 하지만 외신들은 금품 외교의 이면에 사우디의 다목적 포석이 담겨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이번 순방은 ‘고객 관리’ 차원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순방에 포함된 중국을 주목해야 한다. 중국은 사우디 원유 수출의 16%를 차지하는 최대 고객이나 최근 들어 러시아와 경제제재에서 풀린 이란이 점유율을 확대하는 추세다. 영국 BBC방송은 “사우디가 중국에서 제1의 원유 수출국 지위에 쐐기를 박기 원한다”고 분석했다.
원유판매 수입에 치우친 경제구조를 다변화하려는 목적도 뚜렷하다. 살만 국왕은 이번 기회에 일본 정부와 물류ㆍ인프라ㆍ기술 투자 확대 방안을 논의할 예정인데, 저유가 시대가 도래하면서 미래 먹을거리를 찾으려는 시도로 읽혀진다. 사우디는 이미 일본 정보기술(IT) 기업 소프트뱅크의 기술펀드에 450억달러를 투자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출범도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 사우디의 대 아시아 전략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금껏 사우디의 정치ㆍ경제적 핵심 동맹으로 군림했지만, 보호무역주의와 반 이슬람을 천명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다른 선택지를 마련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김이삭 기자>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살만(왼쪽 두 번째부터) 사우디 국왕이 2일(현지시간)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기념식수 행사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