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는 것은 차이고 일렁이는 건 여행자의 가슴이다. 바르셀로나에서 칼라세이테까지, 바람은 이곳 저곳으로 우릴 데려다 놓았다.
바르셀로나 엘프라트 공항에서 빠져나간 차는 바르셀로나 외곽을 향하고 있었다. 바달로나(Badalona)다.
바달로나는 더워지기도 전에 여름을 부르는 휴양 도시다. 시체스보다 더 빠르게 비키니 수영이 가능한, 바르셀로나에서 10km 떨어진 외곽이다.
바달로나에 앞서 이곳이 속한 카탈루냐 지방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카탈루냐는 프랑스와 피레네 산맥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다. 바달로나가 속한 바르셀로나와 헤로나, 레디다, 타라고나주를 포괄한 역삼각형 지방이다. 이곳의 자부심은 소름 끼칠 정도다. 그럴 만도 하다. 토양은 비옥하고, 산업은 번성하며, 문화의 꽃은 풍성하다. 카탈루냐 언어와 문화가 존재한다. 10%밖에 안 되는 면적에서 20%에 가까운 국내 총생산(GDP)를 책임지니, 스페인을 먹여 살리는 가장인 셈이다. 그래서 늘 억울함을 호소한다. 언제나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외쳤다. 카탈루냐 주지사는 올해 신년사에서 (위헌일 지라도) 분리 독립을 묻는 투표를 하겠다고 공표했다.
바달로나는 유난히 스페인보다 카탈루냐 지방임을 강조한다. 거리는 부유한 도시의 안락한 정취가 묻어났다. 정신 없는 바르셀로나의 시간도 여기선 느리게 흐른다. 그 모든 걸 차치하더라도 바달로나 길의 막다른 골목은 바다다. 온화한 지중해가 길을 지워버린다. 본능적으로 낭만은 가득 충전되었다.
바르셀로나가 아닌 바달로나에 짐을 푼 데엔 운명이 있었다.
길에서 만나 길에서 맺은 인연 때문이다. 탕탕의 실크로드 여행에서 만난 후안이다. 좁은 계단을 올라 집 문을 연 순간, 편백나무 향이 났다. 삐거덕 나무 바닥의 소리까지 음악 같던 그곳은 바달로나이자 곧 스페인이었다.
테이블을 가득 메운 환영 만찬 후 동네 주민 같은 산책이 이뤄졌다. 그는 이웃과의 인사로 수시로 걸음을 멈췄고, 와인숍은 그가 어떤 와인을 좋아하는지 선별해주곤 했다. 서로의 욕실에 무엇이 있을 지까지 알 듯한 관계에 자주 미소를 지었다. 우린 눈 뜨면 상다리 부러질만한 푸짐한 아침을 먹고, 점심이면 슬슬 바르셀로나로 지하철(TMB)을 타고 마실 나갔다가 늦은 저녁이 되기 전에 집으로 돌아오는 일을 거듭했다. 게으른 직장인 같은 스케줄이었다.
그러나 귀갓길은 늘 기쁨에 찼다. 오늘은 어떤 저녁이 준비될까. 잃었던 일상의 기쁨이었다. 기한이 있는 여행은 이럴 때 밉다. 헤어질 시간이었다. 괜찮다. 우린 길 위에서 다시 만날 것이다.
강미승 칼럼니스트
바람이 곱게 빗어 내린 암벽 아래 마을 가르가요(Gargallo). 앞은 연두 바다다.
칼라세이테의 라 칸토나다 바. 문을 열자마자 포커 치던 사내들의 시선이 꽂혔다. 우린 철저한 이방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