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6개월 이전 이유식에 추출물 섞어
특정음식 앨러지 생기기 전에 적응시켜
“주지 말라” 기존 지침과 정반대로 선회
댄 브라운의 베스트셀러 추리소설 ‘다빈치 코드’의 거의 끝부분에 보면 중요한 임무를 수행해온 한 심복이 땅콩 추출물이 든 술을 마시고 땅콩 앨러지로 목이 부어올라 급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땅콩 앨러지(peanut allergy)는 땅콩이 포함된 식품을 먹은 후 몇 분에서 몇 시간 사이에 복통이나 두드러기, 기침과 천식, 경련, 기도부종으로 인한 호흡곤란의 증상을 겪고, 심하면 쇼크로 인해 드물게 사망에까지 이르는 인체 거부반응이다. 미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 앨러지를 갖고 있으며 한번 가진 사람은 우유나 계란 앨러지처럼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평생 땅콩 제품을 피하며 살아야 한다.
이 땅콩 앨러지에 대처하는 기본 가이드라인이 최근 완전히 바뀌어 의학계의 주요 뉴스로 부상했다. 어린 아이에게 땅콩이 든 음식을 주지 말라고 했던 과거의 지침과 정반대로 오히려 아주 어린 영아기 시절부터 먹이라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다.
미국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 앨러지 및 감염질환연구소(NIAID)는 최근 아기가 6개월이 되기 이전에 곱게 간 이유식에 땅콩가루나 땅콩 추출물을 첨가하여 먹이라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앨러지가 생길 확률이 높은 아이는 의사의 판단에 따라 그보다 더 이른 시기부터 먹여도 좋다는 것이다. 주의할 점은 땅콩 알이나 땅콩 조각은 질식 위험이 있으므로 절대로 먹여서는 안 된다는 것.
이 방법은 인체가 특정 음식의 앨러지를 발전시키기 전에 미리 음식을 적응시킴으로써 앨러지를 예방하려는 것이다. 즉 인체가 음식을 인식하고 대응하는 시간의 창이 있는데 그 창이 열려있는 시간에 음식을 제공하면 그 음식에 대해 앨러지를 갖게 될 확률이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지난 2000년 미국 소아과학회가 내놓은 지침은 땅콩 앨러지의 위험이 큰 아이들에게는 3세 이전에 땅콩을 주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지침에도 불구하고 피넛 앨러지를 가진 아이들이 계속 증가해 10년 후 조사에서는 미국 아동의 2%가 앨러지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1999년에 0.5%였으니 오히려 4배가 늘어난 것이다.
결국 소아과학회는 이 가이드라인을 철회했고, NIAID는 17년 만에 공식 지침을 완전히 바꾸기에 이르렀다. 이유는 임신부나 아기 식단에서 앨러지 유발 식품을 무조건 제외하기보다는 오히려 일찍부터 조금씩 먹이면 앨러지 예방을 돕는다는 연구결과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근년에 이루어진 몇 개의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가이드라인은 영아에게 땅콩을 금해온 미국, 영국, 호주의 기본 방침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2008년 발표된 한 보고서는 이스라엘에서 살고 있는 유대인 아이들은 땅콩 앨러지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한 학자들이 작성한 것이다. 런던 킹스 칼리지의 소아 앨러지과 교수이며 이 연구의 수석 저자인 기드온 랙 박사는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유대인 아이들과 영국에 살고 있는 유대인 아이들의 앨러지 비율을 비교했다. 그 결과 영국의 유대인 아이들이 10배나 많은 땅콩 앨러지를 갖고 있었다. 이것은 유전적 배경이나 사회경제적 수준 혹은 다른 앨러지의 취약성 등을 고려해도 설명이 되지 않는 결과였다.
두 그룹 사이에서 찾을 수 있는 중요한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이스라엘의 아이들은 유아 시절부터 피넛이 들어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었다. 밤바(Bamba)라고 불리는 이 대중적인 음식은 치즈 퍼프 비슷한 옥수수 퍼프 스낵인데 성분의 50%가 땅콩이다.
이 조사를 통해 ‘이른 시기에 땅콩과 접하는 것이 오히려 앨러지를 예방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학자들은 영국에서 대규모 임상실험을 실시했다. 4~11개월된 유아 수백명을 모집했는데 이들은 피넛 앨러지 고 위험군(이미 습진이나 달걀 앨러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의 아기들이었다. 이들을 무작위로 나누어 어떤 아기들에게는 정기적으로 땅콩 함유제품을 섭취하도록 했고, 다른 아기들에게는 모든 땅콩 식품을 금지하도록 했다.
그리고 나서 아이들이 5세가 됐을 때 조사해보니 앨러지에 취약했던 530명 가운데 땅콩 음식을 먹은 아이들 중에서는 1.9%가, 먹지 않은 아이들 중에서는 13.7%가 앨러지를 갖고 있었다. 또한 연구 초기에 땅콩에 예민 반응을 보인 98명의 아기들은 따로 조사했는데 땅콩을 먹인 아이들의 10%, 먹지 않은 아이들은 35%가 앨러지를 갖고 있었다. 2015년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실린 이 결과는 음식 앨러지 세계의 기초를 흔든 혁명적인 것이었다.
이에 기초해 만들어진 새로운 가이드라인은 아이들의 앨러지 취약 정도에 따라 나누어 다른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습진이나 달걀 앨러지도 없고 땅콩 앨러지의 위험도가 낮은 아기들은 6개월부터 집에서 부모가 땅콩이 든 음식을 먹일 수 있다. 습진이나 달걀 앨러지를 가진 고위험군 아기들은 4~6개월 사이에 이유식을 시작한 후 땅콩 함유 음식을 먹일 수 있는데 의사의 권고에 따르는 것이 좋다.
땅콩 앨러지를 갖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한 고위험군 아기들은 앨러지 전문의를 찾아 스킨 테스트를 하고 의사 오피스에서 땅콩 함유 음식을 먹여볼 수 있다. 스킨 테스트에서 땅콩에 민감 반응이 나왔다 해도 꼭 앨러지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므로 일찍 먹이면 예방이 가능하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스킨 테스트에서 땅콩에 강한 반응이 나온 아기는 이미 앨러지가 발전됐을 수 있으므로 의사의 권고에 따라 땅콩 음식을 피하라는 지침을 받게 된다.
UT 사우스웨스턴 메디컬 센터와 달라스의 칠드런스 메디컬 센터의 소아 앨러지 전문의인 닥터 J. 앤드류 버드에 따르면 집에서 아기에게 땅콩 음식을 안전하게 먹여보는 방법은 부드러운 피넛 버터 2 티스푼과 따뜻한 물 2 티스푼을 동량으로 잘 섞은 다음 먹이는 것이다.
주의할 것은 아기가 처음 먹는 이유식으로 땅콩 함유 음식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어린이로 성장할 때까지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정기적으로 꾸준히 먹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립 앨러지 및 감염질환연구소의 앤소니 파우치 디렉터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은 “게임의 판도를 바꾸는 일”이라며 앞으로 땅콩 앨러지와 음식 앨러지를 갖게 되는 아이들의 숫자가 극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 방법이 모든 땅콩 앨러지를 예방하지는 못할 것이다. 또한 아직 충분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의 즉각적인 신뢰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이 방법이 땅콩 앨러지를 예방할 수 있는 잠재력이 엄청나다고 자신하고 있다.
새로운 가이드라인의 저자 중 한명인 닥터 매튜 그린호트는 “앞으로 수년 내 땅콩 앨러지 환자의 수가 미국에서만 수만명이 줄어들 것이며 미국의 앨러지 전문의들은 땅콩 앨러지 케이스가 현저하게 감소된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땅콩 앨러지의 예방 가이드라인이 바뀌었다. 아기에게 땅콩 음식을 주지 말라던 과거 지침과 정반대로 오히려 아주 어린 영아기 시절부터 먹이라는 것이다.
미국인들이 즐겨 먹는 피넛버터 앤 젤리 샌드위치. 그러나 땅콩 앨러지를 가진 사람은 평생 땅콩 제품을 피하며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