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 괴첼 동물보호 변호사
스위스는 반려동물 보호 엄격
헌법으로 생명 존엄성 보호
“동물 변호 맡았던 700여건서
가해자 모두가 처벌 대상 돼”
스위스는 반려동물 보호에 대한 기준이 엄격하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반려동물을 키우려는 사람들은 4시간 동안 훈련을 받아야 했다. 반려동물을 처음 기르는 사람이라면 이론 교육도 따로 받았다. 이 같은 교육제도는 반려동물의 행동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의견 때문에 올해부터 폐지됐지만 핏불 등 공격 성향이 있는 반려견을 기르려면 여전히 72시간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처럼 스위스에서는 동물 보호를 위한 엄격한 제도 때문에 동물보호 전문 변호사가 활동하는 게 낯설지 않다.
취리히에서 활동하는 안토니 괴첼 변호사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동물들을 위해 정부의 동물 관련 수사를 돕는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는 1992년 스위스 헌법에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들을 위한 ‘생명의 존엄성’을 명시하는데 적극 기여했다. 여기서 말하는 존엄성은 사람과 동물이 모두 똑같이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으며 각 동물은 ‘종의 특성에 적합한 방식으로 살아갈 권리를 갖는다’는 뜻이다.
그는 한국내에서도 지난 해 출간한 ‘동물들의 소송’이라는 책으로 동물 애호가들 사이에 알려졌다. 괴첼 변호사는 한국일보와 가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동물들이 지금보다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그는 각국의 동물보호법을 수집해 자료로 만들고 있다. 괴첼 변호사는 “조사 결과 세계에서 동물보호를 헌법에 명시한 국가는 인도와 이집트, 브라질,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6개국 뿐”이라며 “이 중에서 동물학대를 금지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헌법에 명시한 국가는 스위스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다행히 프랑스, 네덜란드, 콜롬비아 등 법적으로 동물의 지위를 인정해 주기 위해 노력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한인 유학생들을 통해 한국의 동물보호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다. 한국도 2008년 동물보호법에 ‘동물실험은 인류의 복지 증진과 동물 생명의 존엄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괴첼 변호사는 한국도 동물보호법에 명시한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세부 사항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존엄성 명시만으로는 의미가 없고 타고난 가치를 인정해 주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스위스에서는 윤리적, 철학적 토론을 거쳐 동물에 대한 모욕 행위를 비롯해 외모에 영향을 미치는 것, 재능 착취, 동물에 가하는 불쾌한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스위스 내 과도한 동물실험이나 코끼리 관광, 서커스 등을 중단시키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한국은 아직까지 반려동물을 소유물로 취급하고 있어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렇다 보니 학대를 당하는 동물을 긴급 구조해도 주인이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으면 되돌려줘야 한다. 괴첼 변호사는 “스위스에서는 헌법으로 동물의 법적 지위를 개선하자 유실물법, 이혼법, 상속법, 형법 등 다른 법까지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스위스의 경우 동물보호법 위반 시 처벌 수위가 높다. 괴첼 변호사는 “스위스에서는 동물보호법을 위반하면 최대 3년 이하 징역, 2만 스위스프랑(약 2,3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며 “재산에 따라 벌금이 차등 부과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100만 달러까지 부과될 수 있다”고 전했다.
괴첼 변호사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동물들을 위한 변호사로 활동하며 담당했던 사건 700여건 대부분이 동물을 방치한 사건이었는데 모두 처벌 대상이었다. 스위스는 동물을 방치하거나 학대한 사람들은 다른 동물을 키우지 못하게 돼 있다.
반면 한국은 동물보호법을 위반해도 최대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에 그친다. 그렇다 보니 동물보호에 대한 의식도 낮고 법을 준수하려는 의지도 약할 수 밖에 없다. 괴첼 변호사는 “동물은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거나 권리를 침해당해도 변호하지 못한다”며 “그만큼 약자인 동물을 보호하는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중요한 의무”라고 강조했다. <고은경 기자>
안토니 괴첼 변호사가 지인의 반려 고양이를 안아보고 있다. <안토니 괴첼 제공>